한스 폰 칼로비츠 남작의 경우

한스 폰 칼로비츠 남작 (Hans Carl von Carlowitz 1645-1714)은 바로크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림 속의 요란한 가발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남작은 작센왕국의 관리로서 광산학과 삼림학을 정립하였으며 자연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대해 고민한 끝에 문자 그대로 지속가능한 이념을 세상에 남긴 인물이었다. 

한스 폰 칼로비츠 남작(1645~1714)의 초상화. 화가 미상.

한스 폰 칼로비츠 남작은 삼십년 전쟁 (1618-1848) 중에 태어났다. 유럽의 역사 중 가장 끔찍했던 전쟁 중 하나로 기억되는 삼십년 전쟁은 기근과 질병을 남겼다. 그 후 잃은 것을 재건하기 위해 광산업, 수공업과 농업을 무서운 속도로 발전시켰고 이는 또 다른 재앙을 가져왔다.

발전과 성장은 자연의 파괴와 자원의 착취를 동반한다. 이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칼로비츠 남작의 고향 작센왕국은 에르츠 산맥에서 나오는 은산지로 특히 유명했다. 수도 드레스덴을 유럽 최고의 도시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었다.

그러나 은광에서 엄청난 양의 목재가 소모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이미 지금으로 말하면 산림청장 쯤 되는 직책을 맡았었다. 가문에 속한 선산도 있었으므로 칼로비츠 남작은 태어나서부터 산림경제에 익숙했고 목재가 날로 부족해진다는 부친의 근심과 함께 자랐다.

학교를 마치고 청년이 된 칼로비츠 남작은 당시의 관습에 따라 5년에 걸친 긴 연수여행을 떠나게 되는 데 이미 그의 머릿 속에는 “산림경제와 정책”이라는 평생의 연구주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럽 전역을 다니며 각국의 산림관리정책을 면밀히 연구했다. 파리에서 루이 14세의 재상 콜베르의 산림정책에 감명을 받는다. 콜베르 재상은 전함제조를 위해 무분별하게 벌목하는 것을 철저히 금했었다.

나중에 칼로비츠 남작은 은광책임자가 되어 평생 종사하게 되는데 은 채굴보다는 산의 생태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50년 재직 기간 동안 연구한 결과를 정리하여 1713년 근 400 페이지에 달하는 산림경제학 Sylvatica eoconomica 을 냈다. 순수한 산림경제에 대한 책으로는 최초라고 한다. 여기서 그는 <수목이 자라는 속도 이상으로 벌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피력했다. 요즘 생태학에서 말하는 지속가능성의 원리가 탄생한 것이다.

삼림을 경제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면 그 전에 종자를 채취하여 묘목을 만들고, 수목재배원에서 육성하여 숲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지금 경제행위를 하려거든 미래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Grober 1999, p. 5))라는 깊은 교훈을 남겼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17세기 말 산림경제를 집필한 조선의 학자 유암 홍만선 선생 (1643-1715)과 칼로비츠 남작은 생몰연대가 거의 같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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