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den Note
말벌리즈 가든 Malverleys Garden
전통의 문법 위에 실험을 이어가는 현재진행형 정원
헤드가드너 매트 리스의 안내를 따라, 말벌리즈의 방과 방 사이를 걷다
정돈된 들판, 색채로 영감을 준 Meadow Garden
말벌리즈 정원은 처음에 들어갔을 때 유럽의 어느 옛 정원에 들어온 듯 편안한 느낌이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메도우 가든이었다. 여러 색감이 섞인 게 아니라 어디는 노랑과 자주의 보색 메도우, 또 어디는 다양한 색감으로 군락 식재된 곳 등 곳곳에 자리한 메도우 가든이 무척 인상 깊었다.
높낮이, 질감, 반복, 여백, 움직임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식재했지만 자연스럽게 자란 것처럼 보이는 풍경, 내추럴하면서도 깔끔하게 정리된 주변 관리는 가드너의 정성이 느껴졌다. 들판 같으면서도 그 나름으로 정돈된 메도우 가든의 느낌이 색달랐고, 꼭 한번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영감을 받았다. 또한 이 정원을 보며 예전에 네덜란드 미엔 라위스Mien Ruys 정원에서 마주했던 단정하고 깨끗하게 다듬어진 느낌을 많이 받았다.
‘워터 솔저’라는 수생식물도 처음 보았고, 건축물 앞 길게 이어진 보더 가든의 식물들도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어 예뻤다. 답사 중 첫 번째 정원이라 그런지 식물들이 새롭고 놀라운 것들이 많았다. 들녘에 넓게 풍경식 정원으로 펼쳐지는 광경도 특별했고, 하하Ha-ha를 현장에서 직접 관찰하는 일도 참 재미있었다.

정돈된 잔디 산책로와 자연주의적 메도우(Meadow)의 경계. 수레국화와 야생초가 수놓은 들판은 인위적인 식재임에도 대자연 본연의 생명력을 가감 없이 전한다.
봄의 황금비와 현재진행형 정원의 온기
말벌리즈 정원은 틀 안에 있되 틀에 갇히지 않는다. 계승과 실험의 조화를 잘 이루어내고 있으며, 정원주와 헤드가드너가 현존하는 온기 있는 현재진행형 정원이다. 방과 방 사이를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다음을 궁금하게 만든다. 적절한 이성과 개성이 공간 구성과 색채에 잘 배합되어 있어 편안하다. 세련된 아름다움과 다양성, 그리고 그레이트 딕스터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유머 한 방울도 엿볼 수 있었다.
봄이 되면 황금비가 내린다던 연둣빛 라부르눔 아치와 아름답고 청순한 화이트 가든, 클로이스터 가든 수로의 물 흐르는 소리와 양쪽에 늘어선 겹벚나무, 사암 벽면을 따라 저마다 다른 향기를 뿜어내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덩굴장미, 집 앞 풍경식 정원의 히말라야시다와 처음으로 직접 본 하하, 언젠가 한 번쯤 만들어보고 싶은 아름다운 닭장까지 하나하나 모두 기억에 남는다.
지역 식재료로 요리하는 말벌리즈 팜 앤 다이닝 공간과 숍도 아름답고 다정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충분히 하는 듯 보였다. 그곳에서의 건강한 식사와 야외 테이블에서 마신 차 한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문득 그립다.
정원을 함께 가꾸는 ‘Co-stewardship’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동시대 정원 작품이지만, 영국 풍경식 정원과 룸드 가든roomed garden의 병치라는 공간 구조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었다. 특히 집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 지형의 미세한 레벨 변화로 중경과 원경을 연결시키는 방식이 방향마다, 구간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위즐리, 큐, 그레이트 딕스터를 거친 헤드가드너 매트 리스의 설명을 들으면서 오랜 정원의 전통은 양식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정원의 소유주와 가드너의 관계를 통해 계승되고 있음을 느꼈다. 예술적 후원자patron를 넘어서, 동일한 경험과 취향을 공유하며 공동의 정원과 자연을 가꾸는 ‘공동지기co-stewardship’로 나아갈 수 있을지, 새로운 정원주-가드너client-gardener의 관계에 대해 깊은 질문이 생겼다.

울창한 수목 사이에 자리한 정방형 석재 수조
시원한 물소리와 코티지의 소박한 환대
말벌리즈 정원은 억지스러움 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공간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신경 써서 공들여 가꾼 태도가 고스란히 와닿는 곳이었다. 입구부터 푸릇푸릇하게 자란 풍지초와 풍성한 수국이 나란히 줄지어 서서 방문자를 맞아주는데,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성스럽게 환대받는 기분이 들었다.
정원 입구에 자리한 상점에서는 농장에서 갓 수확한 듯 투박하고 못생긴 감자와 당근을 팔고 있어 정겨움을 더했다. 아담한 상점과 레스토랑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테리어도 참 편안했는데, 특히 정원에서 직접 꺾어 말린 꽃과 그라스 다발들이 천장을 자연스럽게 채우고 있어 마치 영국의 어느 코티지에 와 있는 듯한 소박한 멋을 풍겼다.
공간마다 정성이 가득했지만, 그중에서도 길게 이어지는 수공간이 무척 마음에 남았다. 시원하게 솟아오르는 물줄기와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양옆으로 심어진 나무들의 싱그러움과 어우러져 한결 청량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유럽의 웅장한 전통 정원들은 규모나 형식 면에서 우리네 일상 속 가드닝과 거리가 있어 다소 동떨어지게 느껴지곤 했다. 반면 이곳은 사람 손길이 닿는 작고 친근한 공간들로 채워져 있어, 누구나 편안하게 즐기고 적용해볼 수 있는 정원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장미와 숙근초가 겹겹이 층위를 이루는 식재 레이어
한 땀 한 땀 쌓인 정원의 디테일
답사의 첫 정원, 말벌리즈 가든 입구에서 수국과 풍지초 무리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꼭 함께 심어보자 했다. 직접 생산한 채소와 과일, 빵과 꽃, 판매되는 여러 상품마저도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게 한 곳이다. 문을 열고 처음 들어선 공간부터 디스플레이까지, 상업적인 공간인 동시에 예술적인 것을 ‘절대’ 놓치지 않는 곳이란 것을 알았다.
여러 종류의 교관목을 섞어 심었던 혼합 생울타리, 식재 방식과 수형을 만드는 방식이 국내와는 다른 화살나무 생울타리도 돋보였다. 다양한 모양과 종류의 포장재, 울타리 너머의 가든룸과 다른 가든룸으로의 이동 동선, 닭의 집, 라부르눔Laburnum 아치, 재료와 레벨 등 시선이 머무는 곳의 위치까지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는 세심함으로 놓여 있었다. 정원을 만들고 가꾸며 거쳤을 수많은 고민과 시도들이 엿보였다.
핫 가든The Hot Garden은 식재의 조합뿐 아니라, 중첩된 공간들 사이 연속적으로 보이는 축의 연결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던 회랑 정원The Cloister Garden은 장미와 분수, 벚나무들, 단의 높낮이, 코츠월드 석재 담장의 형태와 생울타리와의 조합, 동선과 입구의 위치까지 언젠가 이곳의 감각을 바탕으로 나의 정원에 한 번쯤은 꼭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한다. 잔잔한 물소리와 장미의 향기, 편안하면서도 시원한 그곳이 더욱 그립다.
은빛과 초록과 흰색 식물들의 레이어로 가득 찬 화이트 가든The White Garden은 로망을 꿈꾸기에 충분했고, 하우스 보더The House Border의 자갈과 포장석, 테라스 주변의 섬세한 식물 조합은 어떤 보더보다도 아름다웠다. 연못 정원The Pond Garden, 메도우, 하하 건너편의 풍경과 커다란 나무, 그리고 스텀퍼리The Stumpery 공간의 그루터기가 놓여 있는 위치까지, 가장 기억하고 싶은 게 많은 곳이 말벌리즈 가든이다. 다음 가든룸이 궁금하고 기대되는 구조와 가든룸마다의 다양한 테마로 계속되는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기대하게 했던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 명의 가드너가 몇 년을 함께 하며 소유주와 소통하고 정원을 맡아 디자인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곳인 것 같다. 한 땀 한 땀 예술적이고, 섬세하고, 조화로운 곳이다.
그루터기의 생태적 감각과 화살나무 토피어리
말벌리즈 정원은 주인이 현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헤드가드너가 관리를 하다 보니 굉장히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공간은 나무 그루터기들을 모아 놓고 고사리 같은 것을 심어둔 공간이었는데, 대단히 독특하고 생태적인 인상을 받았고 이전의 영국 정원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정원이었다.
화살나무로 토피어리한 정원 공간도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회양목이나 주목으로 토피어리를 만드는데, 화살나무로 만든 박스 모양 토피어리가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들어 무척 예쁘다고 하니 화살나무 토피어리도 언젠가 한 번 시도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 앞에서 보이는 풍경은 영국 풍경식 정원처럼 앞이 탁 트여 차경借景이 되는 등, 정원 안에 참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반듯한 생울타리 끝, 털처럼 남겨둔 정원사의 위트
말벌리즈 정원은 전체를 탁 트인 하나의 풍경으로 두지 않고, 정원 안에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방에서 다음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듯 공간을 구획한 곳이다. 정해진 네모난 틀 안에서 각 방마다 뚜렷한 콘셉트를 지니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둘러본 곳 중 가장 최근에 조성된 정원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헤드가드너가 그레이트 딕스터 출신이라 그런지 ‘방 속의 방’이라는 전통적인 정원 구성 방식을 가져오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유연하게 재해석한 점이 돋보였다.
특히 정원사가 직접 동행하며 들려준 디테일한 설명들이 흥미로웠다. 수水정원에서는 물소리를 더 풍성하게 키우기 위해 돌 마감의 모서리를 얇게 내밀어 물방울이 튕겨 나가는 소리를 강조했고, 반듯하게 다듬은 생울타리의 코너 끝부분은 굳이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남겨두었다. 고전적인 문법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 슬며시 위트와 현대적인 감각을 섞어 넣은 정원사의 유머가 무척 인상 깊었다.
필자소개 — 박효주 부산광역시 명장/ 우수숙련기술인

박효주는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였으며 현재 블루맨바움 대표이다.
꽃을 시작한지 30년이 넘었고, 독일에서 플로리스트마이스터를 취득했다. 이제는 꽃보다 정원에서 대한 열정이 더 뜨겁고 새로운 도전을 좋아한다.
블루맨바움 플라워가드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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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SPACE MAGAZINE / 3. GARDEN / G-2. 식물적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