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지 않은 스펀지가 도시를 쿨하게 한다
얼마 전 장영란 선생님의 책 <밥꽃 마중>을 소개하고 선생님께 이메일을 드렸다. 선생님의 답장은 따뜻했지만 내용은 참담했다.
별로 안녕하지 못하다고 하셨다. 폭염과 가뭄으로 작물들이 다 말라가고 있다고 했다. 소나기라도 한 번 내렸으면 좋겠지만, 이제는 기후변화 때문에 그것조차 마음 놓고 바랄 수 없다고 했다.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힘내시라는 말, 곧 비가 올 것이라는 허울 좋은 말은 하나 마나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 어렵게 내린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밭과 마을을 휩쓸어버릴 수도 있는 시대다. 소나기를 기다리는 일조차 두려워졌다.
농부의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은 도시인이 폭염에 신음하는 것과 무게가 다르다. 농부의 밭에서 식물이 말라간다는 것은 한 사람의 소득이 줄어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머지않아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 밥과 채소와 과일의 이야기다.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뜨겁게 달아오른 밭에서 작물이 타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줄어든 수확량의 식료품 가격으로 언젠간 환원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흥분할 것이다. 채소와 과일이 왜 이렇게 비싸졌느냐고 묻고, 누군가를 탓할 것이다. 하지만 식료품값은 계산대에서 갑자기 오르는 것이 아니다. 오늘 농부의 밭에서 이미 오르고 있다. 말라가는 잎과 여물지 못한 열매, 몇 번을 다시 뿌려도 싹트지 않는 씨앗 속에서 그 가격은 벌써 결정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미 지구 차원의 식량 전쟁을 논하기도 한다.
올여름 한국에서는 기온이 40℃를 넘은 곳이 속출했다. 7월 초부터 8월 초까지 경남에 내린 비는 평년의 9%에 불과했다. 8월 3일 기준 전국 농업용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53.9%, 평년의 78.1% 수준으로 내려갔다. 저수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수지가 285곳에 이르렀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지표면 온도가 50℃를 넘었고, 물이 부족한 당근밭의 발아율이 10% 안팎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콩과 팥의 잎이 타들어 가고 사과는 햇볕에 데었다. 농부들은 한낮에 일을 할 수 없어 수확할 시간마저 잃고 있다.
이쯤 되면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라는 말도 너무 낡고 무력하게 들린다. “기후 파국”이라는 말도 들려온다. 이번 폭염은 예고편이 아니라 본편일 수 있다. 언론과 방송에서 다투어 전문가들을 초대하여 기후 현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내가 유심히 보는 것은 댓글이다. 함께 걱정하는 댓글도 많지만 의외로 ‘에라 모르겠다, 다 같이 망하지 뭐’ 식의 자포자기 식 댓글도 적지 않다.
고백하건대 몇 달 전에 젊은 후배가 “우리 조경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이미 늦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지면을 통해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렇다면 조경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포장으로 뒤덮어 질식시킨 토양을 살리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정원가, 조경가, 정원학도, 조경학도가 아니더라도 살아 있는 토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가?
토양은 물을 받아 저장하고 정화하며, 식물과 생물을 살리고, 도시를 식히고, 탄소와 양분을 붙잡아 순환시키는, 하늘이 공짜로 준 살아 있는 기반시설이다. 굳이 값비싼 토목공사를 하지 않아도 그냥 거기 있는데 그걸 우리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체계적으로 죽여왔다. 지금이라도 되살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몇 해 전 100장면으로 읽는 서양조경사를 쓰면서 마지막 장면을 스펀지 도시에 할애했다. 그때 어느 쿨한 후배로부터 빈정거림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하필 스펀지라니 쿨하지 못하다는 뜻 같았다. 곧 죽어도 거대담론을 찾는 조선 학자가 생각났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싸운 것은 유학자들이 아닌 민초였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스펀지 시티에 대한 특강 의뢰를 받는다. 다행이다.
우리 도시는 비를 될수록 빨리 모아서 빨리 버리는 것을 오랫동안 치수의 원칙으로 삼았다. 장마로 인한 악순환이었던 셈이다. 앞으로의 도시는 비를 받아들이고, 머금고, 식물에게 건네며, 증발과 증산을 통해 자신의 열기를 식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도시를 식히는 것은 멋진 헌장도 선언도 아니다. 물을 품은 흙, 뿌리가 뻗을 자리를 가진 나무, 그리고 무성한 잎에서 물을 내보내는 식물이다.
유럽의 폭염
이번 폭염은 유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흥미롭게도 폭염일수를 보니 베를린, 파리, 빈이 평균 14일로 비슷비슷했다. 이 도시들이 말하는 폭염일수란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을 말한다. 덴마크는 조금 다르다. 28도가 넘는 날이 3일 이상 이어질 때 그 마지막 날이 1일이 된다. 올해는 폭염일이 6일밖에 안 되었지만 이는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덴마크는 그보다 국가 전체의 연속적인 고온 현상을 측정하는 데 집중한다.
이들 도시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 왔다.
베를린은 토양을 도시 인프라로 정의하고 빗물을 받아들이는 그릇으로 이해한다. 하늘에서 공짜로 내려주는 빗물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악착같이 모아서 활용하는 도시다. 가장 핵심이 되는 정책은 “빗물을 가능하면 내린 곳에 머물게 한다”라는 원칙이다. 빗물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살아 있는 토양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베를린은 스폰지 시티를 도시의 새 정체성으로 수용했다.
멋쟁이 도시 파리는 요즘 포장을 열심히 뜯어내고 있다. 도시가 빽빽하고 역사적 경관의 압력이 강한데도, 학교 앞 거리, 운동장, 주차장과 일부 도로포장까지도 걷어내 식물을 심을 수 있는 살아 있는 토양을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코펜하겐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물을 담기 위한 지형을 설계하고 있다. 이 도시에선 조경가의 역할이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다. 멋들어진 CG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집중호우 때 물이 흐르고, 고이고, 넘치고, 빠져나갈 수 있는 안전한 지형을 만드는 것이다.
고전적인 도시답게 빈은 표준화와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좋은 설계안 한두 개 보다 모든 공공공간과 신규단지, 가로에 그늘, 식재기반, 빗물, 토양보호가 기본이 되는 제도를 세웠다.
앞으로 유럽의 네 개 도시의 조경이 어떻게 기후 변화와 싸우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폭염과 집중호우 앞에서 조경가가 설계 도면 한 장에 무엇을 담아낼 수 있는지 유럽 도시의 현장에서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도시 베를린으로부터 시작하려 한다.
1. 베를린 — 빗물의 행선지를 그려라
2. 파리 — 탈포장 뒤의 토양 이용을 설계하라
3. 코펜하겐 — 범람을 설계하라
4. 빈 — 생태기능을 발주 언어로 바꿔라
폭염이 지난 뒤
폭염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잊을 것이다. 그러면 내년 폭염은 조금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조경은 잊어도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오늘의 비를 저장하고 내년의 그늘을 준비하며 십 년 뒤에도 살아 있을 나무에게 뿌리 뻗을 곳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그래서 조경은 언제나 대기만성형일 수 밖에 없다. 폭염의 한복판에선 너무 느리고 소박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 폭염이 왔을 때 도시를 조금이라도 쿨하게 만드는 것은 그사이 잊지 않고 토양과 물과 식물을 돌본 사람들의 오랜 준비의 덕일 것이다.
편집자 주 —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예측 불가능한 기습적 폭우는 이제 특이 현상이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극한의 날씨에 맞서는 유럽 대표 도시들의 현장은 어떨까요? 고정희 박사가 기후변화와 이에 대응하는 조경의 역할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피처이미지: 토양의 침투 능력과 식물의 증산량을 분석하는 실험포. 베를린 공대 식물적용학과 ©고정희
©3.SPACE MAGAZINE / 고정희 칼럼 / 토양을 되살려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