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부추는 딸네도 안 준다는 보약?
장영란 농부님의 책, “밥꽃 마중”을 다시 읽다가 “봄 부추는 딸네도 안 준다는 보약”이라는 글을 만나 손뼉을 쳤다. 아~ 그래서 그랬나?
작년, 보라매 공원에 독일 정원(Aviators Garden)을 만들면서 부추를 잔뜩 심었다. 독일 사람들은 부추를 먹을 줄 모르니 꽃밭에 심어 꽃을 본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누군가 부추를 싹쓸이를 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엔 잘라갔는데 올해는 홀라당 캐갔단다. 그때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결국 공원의 일정 구간에 나물을 심어 마음대로 캐가게 하면 – 나물 공원 –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었다.
그러다 위의 대목을 만난 것이다. 딸네도 안주는 보약 – 보라매 공원 주변에 사는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슈퍼에서 파는 것보다 정원에 심어 놓은 것이 더 보약다웠나 보다.
밥꽃 마중은 책 전체가 이렇게 봄 부추 같은 보약이다.
2017년 여름, ‘밥꽃을 연구하는 농부’라며 자신을 소개한 장영란 작가님으로부터 이 귀한 책을 받았다. 무주에서 자연재배를 실천하며 땅과 식물을 기록해 온 작가님의 정성 어린 편지에 나 또한 답장을 드렸으나, 분주한 일상 속에 묻혀 인연의 끈을 더 잇지 못한 채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에도 책장에 꽂혀 있는 『밥꽃 마중』은 언제나 내게 옷깃을 여미게 했다.
“밥꽃”이라는 기막힌 이름을 대체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그리고 책 속에 가득한 밥과 꽃에 대한 사랑 고백. 아니 꽃의 사랑에 대한 사랑 고백. 그걸 제대로 마중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라고 고민하면서 보낸 10년이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장영란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영원히 평행선을 그릴 것이므로 그의 세계에 대한 무한한 존중을 담아 늦게나마 책을 ‘마중’하려 한다.
식물의 애정행각에 대한 에로물이자 칼 같은 식물학 서적
제목만 보면 귀농민의 수기가 아닐까 지레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밥꽃 마중”은 우리 먹거리가 되는 식물 약 68종에 대한 칼 같은 식물학 서적이며 동시에 그들의 애정 행각을 환한 미소와 “야들야들해진” 가슴으로 묘사한 ‘에로물’이다. 그런 까닭에 딱딱할 뻔한 식물학 서적이 흥미진진한 이야기 책이 되었다. 각 꽃마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여러 쪽 분량으로 설명했는데 처음엔 고려 가요를 연상케 하는 글로 묘사하고 이어 “꽃보기”와 “더 알아보기”라는 문단을 넣어 재배 방식과 과학적 지식 등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섬세한 관찰과 분석 그리고 농사 체험과 깊은 사고에서 우러난 지혜와 지식이 무궁무진하게 담겨있고 국문학 전공자다운 맛깔스러운 문체 또한 책의 묘미를 더 한다.
원래 식물학자는 아니었지만 9년 동안 관찰하고, 묘사와 설명을 위해 식물학에 파고들다 보니 어지간한 식물학자는 뺨치게 되었다. 책 부록에 식물학 정보들이 빼곡한데 특히 한자 투성이의 식물학 용어를 우리말로 아름답게 번역한 “우리말 식물용어”가 백미다.
밥꽃의 정체
밥꽃이라고 해서 밥을 짓는 벼나 보리 등 곡식 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밥상에 오르는 모든 식물을 통틀어 “밥꽃”이라 정의했다. 장영란이 ‘밥꽃’이라는 낱말 자체를 처음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의미, 즉 사람을 먹여 살리는 곡식과 채소의 꽃을 뜻하는 개념으로 ‘밥꽃’을 널리 알린 사람은 장영란이다.
밥꽃을 크게 곡식꽃과 채소꽃으로 나눴다. 곡식꽃은 다시금 벼과 집안, 마디풀과 집안, 콩과 집안으로 (1부), 채소꽃은 파 집안부터 국화과 집안까지 모두 열 개의 ‘집안’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2~3부). ‘집안’이라니. ‘밥꽃’ 다음가는 기발한 낱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또한 예쁜 우리말 모음집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4부에서는 감꽃, 밤꽃, 배꽃 등 한 글자로 된 우리말 나무꽃과 풀꽃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는 밥이 되는 식물의 여러 가지 면모 중에서 유독 생식기관에 해당하는 ‘꽃’만을 살핀다. 그도 그럴 것이 꽃이 있어야 열매가 열리고 열매가 있어야 우리가 밥상을 차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저자의 말대로 “꽃이 피는 순간은 생명의 절정기, 암수가 만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순간이다. 꽃 둘레로 환한 생명의 에너지가 퍼져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이 알고 보면 식물이 서로 나눈 사랑의 결실이라는 생각을 과연 누가 하고 살까? 저자 장영란은 독자에게 수시로 그 사실을 일깨워 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동부꽃은 부지런하다. 이른 아침인 6시 정도부터 꽃잎을 열기 시작하여 한 시간 정도면 웬만큼 꽃잎이 벌어진다. 날개꽃잎을 펼친 다음 기꽃잎을 꼿이 세운다. 그리고 두어 시간쯤 지나 기꽃잎을 완전히 젖힌다. 이 상태로 햇살을 넉넉히 받으면서 사랑을 나눌 준비를 한다.”
“… 우리가 먹는 딸기는 5월이 제철이다. 그런데 이 딸기라는 녀석은 제철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호시탐탐 꽃 피울 기회를 노린다. 여름에 피는 녀석도 있고, 가을에 피는 녀석도 있으며, 심지어 서리를 맞고도 피는 녀석이 있다. 비록 광합성을 제대로 못 하고, 온도가 낮아 씨를 맺지 못할지라도 사랑만은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단연 가지꽃 사랑이다.
“가지꽃은 왜 고개를 숙이고 있을까? 비 오는 날,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꽃잎이 보랏빛 우산이 되어 꽃술을 지켜주고 있구나! 마치 우산을 피는 것처럼 팽팽하게 꽃잎을 펼친다. 거의 수평에 가깝게 꽃잎을 펼치기 때문에 비가 와도 끄떡없다. 참으로 아름다운 ‘꽃잎 우산’이다. 꽃잎 끝마다 빗물 한 방울 들이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질 정도로 팽팽하다. 가지꽃은 빗속에서도 우산을 쓰고 서로 사랑을 나눈다.”

비 오는 날 가지꽃. 보랏빛 꽃잎 우산. 출처: 장영란, 밥꽃 마중 271쪽
이런 깨달음을 품고 밥상머리에 앉으면 밥이 더 맛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잘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할까?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책의 끝머리에 “먹는 꽃에 대한 예의”라는 에세이를 덧붙였다. 우리는 꽃의 사랑의 결실, 즉 열매를 먹기도 하지만 꽃을 통째로 먹기도 하고 차로 달여 마시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꽃에게 삶을 빚지고 있다. 저자는 그에 대한 예의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 줄 것을 제안한다. 그러다 보면 밥 먹는 행위는 매일매일 치르는 의례가 되고 기도가 된다. 아름다운 일이다.
도서 서지 정보:
- 도서명 | 『밥꽃 마중 : 사람을 살리는 곡식꽃 채소꽃』
- 저자 | 장영란·김광화 공저
- 출판사 | 들녘
- 발행일 | 2017년 2월 27일
- 분량 | 440쪽
- ISBN | 9791159252372
- 시리즈명 |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54
저자 소개:
책의 구성: 식물의 한살이를 반영한 4부 체계
Part 1. 곡식꽃 (3개 집안, 총 20종)
- 벼과 집안 (9종)
식물 종류: 벼(토종벼 포함), 보리, 귀리, 밀, 기장, 조, 율무, 옥수수, 수수
설명: 사람이 먹고사는 식량의 근간이 되는 외떡잎식물군이다. - 마디풀과 집안 (2종)
식물 종류: 메밀, 아마란스 - 콩과 집안 (9종)
식물 종류: 콩(대두), 쥐눈이콩, 서리태, 팥, 동부, 완두, 녹두, 땅콩, 덩굴강낭콩
Part 2. 채소꽃 1: 부추속과 장미군 (5개 집안, 총 21종)
- 파 집안 / 부추속 (6종)
식물 종류: 파(대파), 쪽파, 달래, 마늘, 양파, 부추 - 박과 집안 (7종)
식물 종류: 오이, 수세미오이, 동아, 참외, 수박, 호박, 박 - 장미과 집안 (1종)
식물 종류: 딸기 - 명아주과·아욱과 집안 (3종)
식물 종류: 시금치, 근대, 아욱 - 십자화(배추)과 집안 (4종)
식물 종류: 배추, 갓, 양배추, 무
Part 3. 채소꽃 2: 국화군 및 기타 (6개 분류, 총 18종)
- 참깨과와 꿀풀과 입술꽃 집안 (2종)
식물 종류: 참깨, 들깨 - 가지과 집안 (4종)
식물 종류: 고추, 가지, 토마토, 감자 - 미나리(산형)과 집안 (2종)
식물 종류: 당근, 미나리 - 초롱꽃과 집안 (2종)
식물 종류: 도라지, 더덕 - 국화과 집안 (5종)
식물 종류: 상추, 우엉, 쑥갓, 뚱딴지(돼지감자), 야콘 - 꽃구경이 어렵다는 꽃 (3종)
식물 종류: 토란(천남성과), 고구마(메꽃과), 생강(생강과)
설명: 꽃을 보기 힘든 작물들을 별도 주제로 묶어 다룬 점이 흥미롭다. 접하기 어려운 정보.
Part 4. 한 글자 우리말 나무꽃, 들꽃 (총 9종)
식물 종류: 감나무, 밤나무, 배나무, 뽕나무, 잣나무, 참나무, 쑥, 참취, 밋나물
설명: 특정 ‘과’로 묶지 않고,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온 친숙한 한 글자 이름의 나무와 들꽃들을 나열하여 설명한다.
©3.SPACE MAGAZINE / 책소개 / 밥꽃 마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