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이성희의 가드닝 레볼루션 (Gardening Revolution)
식물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 우연히 토머스 라이너Thomas Rainer와 클라우디아 웨스트Claudia West의 책 <포스트 와일드 시대의 식재Planting in a Post-Wild World>를 읽었다. 그 책은 모호하지만 아름다운, 구름덩이 같은 자연 식생을 과학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식재 설계 과제를 낼 때마다 “북미 자생식물을 많이 써야 한다” 말하곤 했다. 어쩐지 그 말이 늘 옳게 느껴졌다. 식재디자인 수업에서는 위의 책이 부교재로 정해졌다.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설교처럼 들렸다. 네이티브 플랜트 팟캐스트Native Plant Podcast를 몰아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조금씩, 부분적으로 세뇌되어 갔다. 영어를 더 잘했다면 완전히 세뇌되었을지도 모른다.

뉴욕식물원NYBG 자생식물원에 핀 비밤 Monarda didyma ‘Raspberry Wine’ ©️이성희
이후 뉴욕주 북부의 애디론댁 산지를 찾아 다니며 자생식물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네이티브 플랜트 트러스트Native Plant Trust 같은 곳에 인턴십을 지원하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서 인턴을 하게 되어 포기하긴 했지만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기관이다. 미 북동부 자생식물Native Plants of The Northeast 같은 페이스북 그룹에 올라오는 사진을 챙겨보기도 하고, 거의 매일 뉴욕식물원 자생식물원들을 거닐었다. 차차 개별 식물들의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버터플라이 밀크위드 Asclepias tuberosa ©️이성희
어쩐지 이런 식물들로 구성된 정원이 좋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원 디자인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나 한국 자연주의 정원 운동을 이끄는 김봉찬의 정원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의 정원이 자생식물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함으로써 정원의 미적·기능적·생태적 가치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레리 콘플라워 Ratibida pinnata ©️이성희
내가 그런 정원을 좇게 된 것은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거나 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홀릴만큼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에는 옳고 선한 모든 것을 아우르고, 나아가 그것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꽃 한 송이에서 우주를 보는 느낌,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거나 음미하는 느낌,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뉴욕식물원에서는 이런 과정을 해석interprete이라 부른다. 이런 아름다움을 설계로 구현하는 일은 분명 재능이나 노력만의 결과가 아니라, 엄청난 재능에 엄청난 노력이 더해진 결과다. 그래서 나는 그 디자이너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

준베리Amelanchier x grandiflora ‘Autumn Brilliance’와 청나래고사리Matteuccia struthiopteris ©️이성희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grulandscape.com)에 실린 글을 변역했습니다. 원문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 이성희

미국 롱아일랜드의 유서깊은 영국 저택 소속 플랜팅필즈수목원Planting Fields Arboretum에서 인턴으로 근무했고, 뉴욕 브롱스 소재 뉴욕식물원의 정원운영센터Horticultural Operations Center와 놀런그린하우스Nolen Greenhouses에서 생산/전시 담당 가드너로 일했다. 이후 국제 공인 아보리스트로서 1880년 설립된 수목관리전문회사 Davey Tree Expert Company에서 근무하다가 최근 GRU Landscape & Design을 설립하여 독립 가드너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고,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SK브로드밴드, CJ그룹, 케이아이엔엑스, 티맥스소프트 등에서 경영기획업무를 담당했다. 2018년 뉴욕주립대SUNY Cobleskill에 편입학하여 Plant Science와 Landscape Development를 전공했다. 북미 자생식물을 중심으로 자연주의 정원을 추구하며, 뉴욕주 중북부Upstate New York의 혹한기를 견딜 수 있는 다양한 정원 식물 발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메일 : grulandscape@gmail.com
페이스북 : facebook.com/onlygrac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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