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섬은 장미섬이다 vs 로도스 섬에는 장미가 없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본문 33쪽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고대 말기 장미를 집약적으로 재배했던 로드Rhode 섬은 향을 얻기 위해 꽃잎을 찧었기 때문에 꽃잎향기로 유명했다. [33쪽]
우선 여기서 로드 섬은 사실 로도스 섬 The Island of Rohdes을 말합니다.
그리스의 로도스 섬이 장미의 섬이라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게다가 <로도스 섬의 장미>라는 독일 유행가도 있고 해서 필자 역시 로도스 섬이 장미의 섬이라 믿고 있었죠. 언젠가 가서 보리라 생각하면서.
저명한 예술사가 스테파니 하우쉴드 여사가 장미에 대해 아름다운 책을 한 권 쓴 것이 있는데 그 책에서도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리스 도데카시나 제도에 있는 로도스 섬은 장미의 섬이라는 뜻이고 고대에 장미재배의 중심지가 되어 장미잎을 말리고 오일을 증류하는 향기가 섬 전체 가득했다. ((Hauschild 2008, p. 26))
그 외에도 여기 저기서 언급하고 있기에 고대 장미 재배원의 유적지가 혹시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2016년에 마침내 찾아가 볼 요량으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뜻밖으로 장애에 부딪쳤습니다.
로도스 섬에 대한 동시대 자료를 찾아보니 “로도스의 이름은 장미와 아무 관계도 없다”. “로도스에는 장미가 없다.”, “로도스의 고대 화폐에 장미가 새겨져 있으니 장미섬이다.” 등등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선 위키백과에서 로도스를 찾아 보니,
“로도스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의 장미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페니키아 어에서 파생한 신 그리스어로서 석류라는 뜻을 가졌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출처를 명시하지 않았기에 저자가 그리스어 학자여서 자신의 이론을 피력한 것인가 보다 어림잡았습니다.
Wikivoyage를 보니 “로도스는 대략 장미라는 뜻이지만 어떤 장미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진짜 장미일 수 없는 것이 로도스 섬에는 장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꽃들이 후보로 거론된다. 이에 대한 전설과 이야기가 끝없이 전해지는데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는 어떤 이야기가 전해지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아, 정말이지.
내 애장서 중에 ⌈그리스의 식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서 장미가 새겨진 로도스 동전 사진을 본 기억이 문득 났습니다. 다시 찾아 보니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 대개 장미로 해석하지만 정확히 어떤 꽃인지는 알 수 없다.”((Baumann 1982, p. 192))라는 요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이번엔 로도스섬 주화를 검색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판매 사이트가 여러 개 뜹니다. 기원전 250-200 년경에 제조된 것들을 판다고 하네요! 이 주화에 새겨진 꽃이 장미와 매우 흡사한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꽃받침이 꼭 닮았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화만 보고 이것이 장미다 아니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도스 식물에 대한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운이 좋았죠. 독일 칼스루에 대학 식물학과에서 만든 <로도스 섬의 식생>이라는 사이트가 정말 있었습니다. 모두 1441 종이 조사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장미는 단 두 종이더군요. 하나는 야생하는 페니키아 장미Rosa phoenicia로 매우 보기 드물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두번 째 장미는 원예종으로 Rosa sempervirens인데 어느 개인 정원에서 자라고 있다고 하고요. 잎은 상록이고 흰 홑꽃이 피는 덤불형 장미입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로도스 섬의 기후가 장미 생육에 적합치 않은 것인지. 고대 이후로 기후가 그리 변하여 한 때 장미 재배의 본고장이었던 로도스에 장미가 사라진 것인지. 유럽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장미가 하필 장미의 섬으로 알려진 그 곳에 없다니.
칼스루에 대학의 식물학과 하슬러 Hassler 박사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친절하게도 이런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로도스 섬에는 단 한 종의 장미가 자생합니다. Rosa phoenicia이고요. 그나마도 매우 드뭅니다. Rosa sempervirens는 최근에 누군가 정원에 심은 것인데 로도스 섬 자생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장미섬이라는 건 얼토당토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지중해 연안에는 장미가 아주 귀합니다.
과거의 상황에 대해선 아무도 정확하게 발언할 수 없습니다. 로도스 섬에 식물학자가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이 19세기 중엽이었으니까요. 아마도 고대에는 지금보다 숲이 많아서 원칙적으로 장미 생육조건이 유리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에 벌목을 굉장히 많이 해서 기후가 달라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옛날에는 아무도 로도스 섬에서 장미를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로도스 장미에 대한 참고서적도 전혀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Kleinsteuber 박사가 로도스 섬의 식물에 대한 책 1권을 방금 출간했습니다. 여기선 장미를 다루고 있지 않고요. 2권에서 다룰 예정인데 아마도 1-2년 지나야 출간될 듯합니다.
여러 문헌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제가 보기에 너무 동화같은 얘깁니다. 내 견해로 고대 작가들이 장미라고 얘기한 것은 아마도 Rockrose를 두고 말한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일단 장미와 흡사하고 동전에 새겨진 것과도 유사하며 로도스 섬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2016년 8월 5일
M. Hassler 드림
하슬러 박사가 말하는 Rockrose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장미만은 못하지만 아주 예쁜 꽃입니다. 이름에 rose가 들어가니 사람들이 일반 장미와 혼동한 것 같습니다. 어쩌다 그런 소문이 나게 되었는지 매우 궁금한데 언젠가 시간이 나면 추적해 볼 생각입니다. 어쨋든 일단 로도스 섬 여행은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장미섬 찾는 걸 포기한 건 아닙니다. 고대에 장미 수요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어딘가 장미섬이 있었을 겁니다. 아니 있습니다. 마침내 찾았죠. 그런데 단서가 된 것은 고대 로마의 시성 비리길리우스의 시 한 구절이었습니다. 그 얘기는 다음에…

신화에 따르면 로도스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헬리오스가 로데라는 요정과 혼인하여 아들을 일곱이나 낳습니다. 그 중 장남이 다시 아들을 셋 낳았다고 하는데 이들이 로도스 섬의 조상이랍니다. 어차피 신화이니 사실확인이 불필요해서 좋습니다.
참고 자료
- Baumann, Hellmut (1982): Die griechische Pflanzenwelt in Mythos, Kunst und Literatur. München: Hirmer (Reise und Studium).
- Hauschild, Stephanie (2008): Rosenträumerei. Geschichte und Mythos einer königlichen Blume. Ostfildern: Thorbecke.
- Rosa sempervirens – Flore of Rhodes. http://worldplants.webarchiv.kit.edu/rhodos/index.php?name=Rosa%20sempervirens
- KARIEN – KARISCHE INSELN – RHODOS Didrachme SS bgr_330405 Griechische Münzen. http://www.cgbfr.de/carie-iles-de-carie-rhodes-didrachme,bgr_330405,a.html
- rose03.jpg (591×489) (2008). http://www.rhodos-welten.de/rose/rose03.jpg, zuletzt aktualisiert am 02.07.2008
© 써드스페이스 블로거진/홉하우스 읽기
역시 장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았나 보네요…들장미 노래 한 곡 남겨 놓고 갑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IZPqS1DctIc
노래 잘 들었습니다. 오랫만에 들으니 정말 좋네요. 잠시 멍하니 있었습니다. 좋은 선물에 답례할 것이 없네요. 좋은 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