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의 심볼을 보면 의자를 나타내는 사각형, 토끼 한 마리, 물을 나타나는 물결무늬, 사구 위의 빵 한 조각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집트 상형문자이며 합쳐서 푼트Punt가 됩니다.

이 심볼들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 미지의 나라로 향한 모험과 엄청난 부를 상징했습니다. 너무 신비에 싸인 곳이어서 신들이 사는 곳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푼트는 정말 존재했습니다. 기원전 2천 5백년전부터 (제5왕조) 람세스 III세 시대까지 (1183-1152 BC, 20 왕조) 파라오들이 무역 원정대를 여러 차례 보냈습니다. 그중엔 돌아오지 않은 원정대도 있었지만 무사히 돌아 온 원정대는 꿈도 꾸지 못할 보물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오죽 귀했으면 왕들이 무덤이나 장제전 벽에 부조를 남겨 영원히 기록했을까요.

다만, 푼트가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였나는 오래 숙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파라오들이 거기서 들여 온 보물 목록은 공개하면서도 푼트의 정확한 위치와 찾아가는 법은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리적 위치에 대한 작은 힌트조차 없었습니다. 아마도 일급 기밀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신왕국대 1550년경부터는 푼트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아주 사라진 듯했죠.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황금의 나라, 신들이 사는 나라를 찾는 일은 학자들의 퍼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푼트는 배로만 갈 수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푼트 원정을 언급한 것은 사후레 Sahure왕대였습니다. 사후레 왕은 구 왕국의 제 5왕조의 파라오로서 기원전 2490년에서 2475년경까지 통치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팔레르모 석 – 제1왕조에서 제5왕조까지의 파라오 명단이 적힌 비석에 보면 사후레 왕의 마지막 해에 푼트에서 원정대가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000 덩어리의 몰약과 금과 은의 합금을 왕이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1994년 아부지르 Abusir 에 서 있는 사후레의 피라미드 램프에서 이 사건을 묘사한 부조도 발견되었습니다. 푼트라는 곳이 전설 속의 나라가 아니라 실제한다는 증거가 발견된 거죠.

개, 당나귀와 진기한 식물들


사후레 피라미드 램프의 부조화 중 하나. 네 척의 선박이 묘사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그림. © T. EL AWADY, in: Bild der Wissenschaft, 18.10.2011

부조 그림에는 4척의 날렵한 배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신기한 물건을 가득 싣고 왕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배 위에는 개, 당나귀, 그리고 몰약을 만드는 나무 Antjw (Commiphora 속)도 보입니다. 이 나무는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곳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오늘 소말리아, 에리트리아, 이디오피아가 위치하고 있는 곳을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합니다. 사후레 왕은 몰약나무를 나일강변에서 재배하고자 했습니다. 부조의 윗부분에 파라오가 궁전의 정원에서 나무를 직접 가꾸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요. 이집트 왕들은 귀한 유향나무나 몰약나무를 직접 재배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늘 실패했다고 합니다.

제5대 왕조의 제드카레Djedkare 왕 (BC 2405-2367 경) 도 푼트에서 귀한 물건을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제 6대 왕조의 기록에 다시 푼트로 가는 배들이 등장합니다. 페피 나크트Pepi Nakht라는 귀족이 자신의 무덤 석실 벽에 생전 업적을 자랑하면서 – 푼트로 가는 원정대를 위해 배를 만들게 했노라고 기록했습니다. 지난 수 십년 간 이집트학 학자들은 푼트가 홍해나 인도해에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사실과 신화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긴 합니다. 제12왕조대로부터 전해 지는 동화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푼트를 사실적 고장이 아닌 곳으로 그리고 있으니까요. 그중 “조난 당한 사람들 이야기”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선원 한 명이 배를 타고 가다가 조난을 당합니다. 파도에 쓸려 어느 외딴 섬의 해안으로 밀려가게 되었는데 이 섬이 어마어마한 보물섬이었습니다. 이 보물섬의 지배자는 거대한 뱀이었는데 몸전체가 황금으로 되어 있었으며 눈은 청금석 Lapislazuli이었습니다. 이 황금뱀은 조난 당한 선원을 잘 보살펴 주고 무사히 귀환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몸에 지니고  있는 물건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꺼내어 바치려 하니 뱀이 조롱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네. 내가 푼트 섬의 지배자 아닌 가. “

아마도 푼트에서 오는 금은보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일반 백성들에겐 그때도 전설로만 느껴졌겠지요.

언덕위의 굴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우연히 제12 왕조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로 인해 푼트원정대의 비밀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잡합니다. 2004년 성탄절 직전, 미국 보스턴 대학의 고고학자 카트린 바드Kathryn Bard 박사가 이태리 나폴리 대학의 동료와 함께 이집트의 메르사 가와시스라는 항구 근처의 건천에서 모래를 파고 있었습니다. 왜 성탄절을 앞두고 이집트에 가서 모래를 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고고학자들이 하는 일이 그것이니 성탄절이고 뭐고 무언가를 찾고 있었겠죠. 이 건천은 한 때 항구도시 메르사 가와시스에서 홍해로 흘러들어갔었다고 합니다. 모래를 파던 어느 학자가 문득 눈을 들어 둘러보니 사구 언덕의 측면에 굴 입구가 하나 보였습니다. 굴이라기 보다는 암석에 난 구멍에 가까웠죠. “손을 집어 넣으니 굴 입구였다”고 바드 박사는 보고했습니다. 이후 며칠 동안 굴을 탐사해 보니 여러 개의 동굴이 연결되어 있었고 여기서 배 선체를 이루었던 널판지들과 노, 아직도 둥글게 말아 놓은 채로 있는 동앗줄을 발견했습니다. 4천년전에 묶어 놓은 매듭이 그대로 있었답니다 (!) 고고학적 심장이 엄청 세게 뛰었을 겁니다. 그 외에도 21개의 나무 상자를 발견했는데 상자는 아쉽게도 모두 비어 있었지만 뚜껑에 “푼트에서 온 보물”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학자들에겐 이 글씨가 바로 보물이었겠죠.

수천 년 전, 푼트에서 돌아 온 뒤 아무도 이 배에 손대지 않은 듯했습니다. 바드 박사 팀은 옛날 항구를 발견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모래가 쌓이며 항구의 위치가 바뀐 것이지요. 누가 명을 내렸을까? 둘째 동굴의 입구에 석회석 블록이 쌓여 있는데 마치 오늘의 비석과 같은 규모였고 그중 하나에 아메넴헤트 3세Amenemhat III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푼트로 원정을 다녀오라고 명을 내렸다고 써 있었습니다.  아메넴헤트 3세가 이 항구에서 원정대를 내보낸 유일한 왕은 아닌 듯했습니다. 동굴에서 발견된 도자기 조각들을 분석한 결과 적어도 중왕국 (2046년경)부터 신왕국 초기까지 이 항구를 이용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나무벌레들이 폭로한 비밀


배의 선체에서 수많은 나무벌레들의 구멍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바다에서만 사는 조개의 일종입니다. 실제로 이 배는 오랜 시간을 바다에서 보낸 것이죠. 아마도 여기서 배를 수선하려 했던 듯합니다.

푼트 여행을 위한 준비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주로 나일강에서 가벼운 배를 타고 다니던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푼트로의 여행은 지금 달나라 가는 것만큼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바다 (홍해)에서 항해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선박을 지을 나무부터 준비해야 했죠. 리바논에서 시더나무를 가져왔습니다(이집트에는 대추 야자가 거의 유일한 나무였음.). 아마도 나일강 우안의 콥토스 Koptos라는 곳에 조선소가 있었을 것입니다. 콥토스는 대상들이 집합하는 곳이기도 했죠. 여기서 사막을 건너 홍해로 갔으므로 오래전부터 상업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선박을 어떻게 175킬로미터 떨어진 항구까지 운반했을까요. 조립식 배를 만들었답니다. 분해해서 당나귀의 등에 싣고 날랐습니다. 당시엔 이집트에 낙타가 아직 없었던 때였습니다. 꼬박 열흘 정도 걸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선박뿐 아니라 선원들과 물, 식량도 날라야 했으니 행렬이 굉장했을 겁니다.

목적지는 위에서 본 가와시스Wadi Gawasis 천입니다. 당시에는 골짜기가 바다에 직접 면해 있었죠. 위성사진을 보면 해안에 선착장이 있던 흔적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진짜 작업이 시작됩니다. 선박들을 다시 조립해야 했으니까요. 똑똑한 이집트 사람들이 널빤지에 미리 숫자로 표식을 해 두었습니다. 바로 바드 박사 팀이 발견한 그 자리에서 조립했다고 합니다.

원정을 다녀온 뒤에는 피로에 지쳤음에도 배를 다시 분해해서 사막을 건너 콥토스로 옮겨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지고 온 보물도 날라야 했습니다.

200명이 떠나다


이제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으로 가야 할 차례입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이 자신의 장제전 벽에 푼트 원정대 장면을 그려서 남겼기 때문입니다. 여왕도 위에서 묘사한 방식대로 원정대를 보냈겠지요. 홀 하나의 벽 전체가 원정대 묘사에 쓰였습니다. 바드 박사팀이 발견한 것과 똑 같이 생긴 선박이 그려져 있으며 선원, 키잡이, 감독, 선장, 호위무사까지 해서 배 다섯척에 이백명이 나눠타고 가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벽화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많은 부분 훼손되었고 부분적으로 도난도 당했습니다. 처음 벽화가 발견되었을 당시엔 아직 상태가 좋았고 그때 그려둔 것들이 있어

그 뿐 아니라 푼트에 도착하여 그곳의 뚱뚱한 여왕의 영접을 받는 장면도 묘사했습니다. 이집트 선원들이 가져 온 선물을 나르는 장면도 있고 유향 덩어리 또는 금덩이를 산처럼 쌓아 올린 장면도 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들이 무엇을 선물로 가져갔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이집트 왕의 명에 따라 이집트에 있는 물건들….” 정도로만 기록되어 있고 선원들이 푼트의 왕 앞에 선물을 잔뜩 쌓아놓은 장면이 묘사된 것으로 보아서 탈취가 아닌 교역이었던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푼트에서는 유향과 몰약 외에도 상아, 금, 은, 소금 및 각종 진귀한 동물들을 수입했다고 합니다.

푼트 사람들은 말뚝 위에 종 모양의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집 주변에는 짙은 대추야자나무 숲과 농장이 있고 그늘에선 소가 풀을 뜯고 마침 새 한 마리가 날아갑니다. 이런 장면을 모두 세세히 부조로 남긴 겁니다. 그런데 이 새는 열대의 태양새입니다. 그 외에도 원숭이, 표범, 하마, 기린 등이 노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모두 이집트에는 없는 동물들입니다.

1-Hatschepsut_Punt expedition (4)

하트셉수트 여왕 장제전에 묘사되어 있는 푼트의 풍경과 주거형태. 데크 위에 세운 종 모양의 둥그런 집에서 살았던 것 같다. 왼쪽에 열대새 한마리가 날아가는 장면도 보인다. © jeonghi.go

1-Hatschepsut_Punt expedition (8)

푼트 원정대의 배와 선원, 물 속의 물고기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음. 하트셉수트 여왕 장제전 벽화. © jeonghi.go

결정적 힌트 – 개코 원숭이


그 다음에는 선적 장면이 나옵니다. 유향나무를 분을 떠서 싣고 있으며, 푼트 사람들이 상아와 금가루가 든 항아리, 기린 등 동물을 데려 오는 것이 보입니다. 그 중에는 개코 원숭이도 보입니다.  바로 이 개코 원숭이가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됩니다. 개코 원숭이는 나일강변에서 살지 않는데도 고대 이집트에서 애완 동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외국에서 수입해 온 귀한 동물이므로 주인이 죽으면 원숭이도 미이라를 만들어 저 세상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이런 원숭이 미이라가 3구가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나다니엘 도미니 박사 팀이 이 원숭이들을 조사해 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개코원숭이가  혹시 푼트에서 온 것이 아닐까 짐작한 겁니다.

마시는 물을 통해서 모든 생명체는 각 지역 특유의 산소 동이원소를 보유한다고 합니다. 동위원소는 서로 질량이 다릅니다. 핵의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의 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산소 동이원소는 전신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치아, 뼈, 털. 이들을 분석하면 이 동물이 어디서 자랐는지 알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이주한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대영박물관은 도미니 박사 팀에게 원숭이 두 마리의 털을 제공했습니다. 한 마리는 왕들의 계곡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한 마리는 테베의 유적지 콘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둘 다 3000천년 정도 된 원숭이 들이었습니다. 도미니 박사 팀은 현재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이디오피아, 예멘과 모잠비크에서 서식하고 있는 파비안(개코원숭이)의 털을 비교 샘플로 삼았습니다.

테베의 원숭이는 너무 오랫동안 이집트에서 살았음이 드러났습니다. 반면에 왕들의 계곡에서 나온 원숭이는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죽은 듯했습니다. 털에서 분석된 동위원소는 에리트리아와 이디오피아 동쪽에서 살고 있는 원숭이의 동위원소와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파비안의 성장환경


그렇다고 원숭이 한 마리를 증거로 해서 그곳이 황금의 나라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도미니 박사 팀은 이제 파비안들의 뼈를 분석하는 중입니다. 뼈는 털보다 더 정확하다고 합니다. 뼈의 스트론튬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이들의 고향에 대해 확실한 것을 말할 수 있답니다. 산소와는 달리 스트론튬은 토양먼지와 먹이와 함께 섭취됩니다. 칼슘과 닮았으며 치아와 뼈에 누적됩니다. 이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파비안이 어디 출신인지 – 다시 말하면 푼트가 어디 있었는지 확실히 알수 있게 됩니다. 현대 과학 만세?

홉하우스 여사는 21쪽에서 오늘의 소말리아에서 유향나무를 들여왔다고 썼지만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소말리아와 에리페리아로 범위만 좁혔을 뿐입니다. 현재 소말리아와 에리페리아는 서로 푼트였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때 그리 부유했던 나라가 지금 너무 가난한 것이 마음 아플 뿐입니다. 그 때 너무 인심좋게 퍼 줬던 것일까요?

참고 문헌


  • Angelika Franz: “Das sagenhafte Goldland Punt”, in: Bild der Wissenschaft, 18.10.2011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