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NE_플루언서와 우문현답 이어가기

남 기 준 편

언론인/출판인/현 환경과조경 편집장


올해 8월 환경과조경 통권 400호가 출간된다. 이를 계기로 일찌감치 남기준 편집장을 만났다. 누구시냐고 묻자 오랜 생각 끝에 “조경 전문 편집자?”라고 대답했다. 복선 주의! 
남기준 편집장은 한국 조경계의 발전에 적어도 세가지 방향에서 크게 기여했다. 
우선 환경과 조경 편집 기자로서 일찌감치 조경인들을 부추겨 조경 담론을 이끌어 냈다. 그 덕에 주옥같은 글이 무수히 탄생했다면 과장일까? 그 다음 대한민국 정원과 조경의 도서문화의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정원과 조경관련 도서는 책장을 채운다. LAST BUT NOT LEAST! 대한민국 정원박람회 출발 선상에 그의 남다른 혜안이 있었다. 세간에는 고정희 박사의 저서 “독일 정원 이야기, 정원 박람회의 도시를 가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있으나 그 책이 나오게 된 것은 온전히 남기준의 아이디어였다. 
남기준은 이따금 책에서 나와 정원박람회 현장으로도 간다. 


“어렸을 때 살던 집에서 제일 큰 나무가 목련이었다.”

3.SPACE MAGAZINE: 우선 인터뷰에 응해 주어 감사하다. 뜬금없지만 좋아하는 나무를 말해달라. 물론 많겠지만 굳이 하나만 선택한다면?

남기준: 목련(아무 망설임없이). 예전 어렸을 때 살던 집에서 제일 큰 나무가 목련이었다. 안방 창문 바로 앞에 심겨있었다.

3.SPACE MAGAZINE: 본인의 이력을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

남기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석사까지 마친 후, 첫 면접을 본 곳이 환경과조경이었다. 아직까지 다른 회사 면접을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계속 환경과조경에만 다닌 건 아니다. 1998년 겨울에 환경과조경에 입사한 후 2010년 가을까지 다니다가, 그 해에 오휘영 교수님의 배려로 ‘나무도시 출판사‘를 차려서 독립했다. 나무도시에서 20여 종의 책을 출판했고, 2013년 가을에 박명권 발행인님이 환경과조경을 인수하신 후에 다시 복귀했다.

세상 모든 것이 편집의 대상

3.SPACE MAGAZINE: 본인의 직업을 뭐라고 정의하겠나?

남기준: 조경 전문 매체에서만 일하다보니, 가끔 나는 조경인인가, 출판인인가, 잡지인인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15년 전쯤에 두 가지 목표를 세운 적이 있는데, 광화문 교보문고의 책장 하나를 내가 편집한 조경(정원) 책으로 채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한글로 된 조경(정원) 책을 가장 잘 만드는 에디터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교보문고 책장을 채우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보통 단행본 한 권의 생명력이 5년 정도이기 때문에, 절판되지 않고 판매되는 단행본만으로 책장을 모두 채우려면 매년 50종 정도는 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절판된 책과 비매품 책까지 모두 합치면 우리 집의 작은 책장 하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책을 편집했는데, 요즘은 목표를 좀 바꿔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시리즈 도서를 기획하는 것이 꿈이다.

올해 8월에 월간 환경과조경 통권 400호가 발간되는데, 창간호부터 392호(2020년 12월호)까지 책 두께만 재보니 총 4.12미터였다. 나는 통권 129호(1999년 1월호) 마감부터 참여했는데, 단행본보다 잡지는 부담감이 더 크다. 잡지의 슬로건이 “한국 조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고, 내일의 새로운 조경 문화를 설계합니다“인데, 충실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늘 묻고 있다. 사실 늘 묻지는 않고, 가끔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 찔려서 뜨금해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정원박람회 행사 운영도 맡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잡지사나 출판사의 편집장이 아니라 행사기획사의 실장처럼 일하는 시간이 더 많다. 2006년에 출간된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 정원박람회가 만든 녹색도시를 가다>를 통해 국내에 본격적으로 유럽 정원박람회가 소개되었는데, 어느 순간 책 편집이 아니라 정원박람회 실무를 맡게되어 묘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누군가 “세상 모든 것이 편집의 대상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의 내 직업은 조경 전문 편집자가 아닐까 싶다.

조경의 <장르>에 관하여

3.SPACE MAGAZINE: 오랫동안 전문 잡지 편집을 해 왔다. 최근, 잡지의 콘텐츠와 관련하여 “다른 잡지, 예를 들어 영화나 문학 잡지의 콘텐츠는 작품이나 작가 위주인데 비해 조경잡지는 ‘장르’ 일색”이라 설명했다. 일단 조경의 <장르>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남기준: 월간 환경과조경 2021년 1월호에 “4.12미터 이어달리기“란 제목의 글을 하나 썼다. 통권 400호를 기념하여 창간호부터 400호까지 되돌아보는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로 1호부터 50호까지를 리뷰하는 글이었다. 그 글에서 ‘조경 장르‘란 표현을 했는데, 지나치고 거친 일반화였다.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발간된 환경과조경의 특집 중에서 절반 이상이 조경의 대상지였다.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다루는 분야가 무엇이든, 결국 잡지의 콘텐츠는 장르론, 작품론, 작가론으로 압축된다. 그런데 영화나 문학 잡지가 개별 영화나 소설 등에 집중하는 ‘작품론’과 영화감독, 영화배우, 소설가, 시인의 작품 세계를 파고드는 ‘작가론’이 압도적인데 비해, 『환경과조경』은 장르론이 절대 우위다. 코믹, 액션, 멜로, SF, 스릴러, 느와르, 시대극을 집중 조명하는 영화 잡지의 특집도 적진 않지만 작품이나 작가(감독, 배우)에 대한 특집에는 비할 수준이 아닌데, 『환경과조경』은 정반대다. 공원, 광장, 정원, 가로, 리조트, 옥상 조경, 빌딩 조경, 수경 공간과 같은 장르 일색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공원, 광장, 가로를 장르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보다는 공원을 기념공원, 역사공원, 문화공원, 조각공원, 대형공원, 생태공원, 어린이공원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장르의 성격에는 더 부합한다. 하지만 개별 작품론, 개별 작가론이 부족함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장르란 표현을 끌어다 썼을 뿐이다. 조경의 장르보다 개별 작품, 개별 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해 보인다.

정원을 남기려 하지 말고, 정원을 즐기고 가꾸는 사람들을 남기는 것이 중요

3.SPACE MAGAZINE: 지난 수년간 정원박람회 진행을 맡아 왔다. 사실 잡지사에서 정원박람회의 개최를 주관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한국 정원박람회 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정원박람회 붐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가?

남기준: 정원박람회보다는 정원을 가꾸고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었으면 한다. 정원박람회는 그 기폭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1년여 동안 모두가 갑갑하고 답답한 일상을 보냈다. 금방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인테리어나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농담처럼 코로나19가 사라지고 나면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사회적 정원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 대신 ‘생활 속 화분두기‘가 유행하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장난처럼 보이긴 하지만, 정원박람회는 도보로 이용 가능한 생활권 공공정원을 꾸준히 조성할 수 있으니 ‘사회적 정원두기‘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 정원박람회는 첼시 플라워 쇼나 쇼몽 가든 페스티벌처럼 행사 이후 쇼가든을 철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존치하는 추세이니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정원박람회 혹은 정원 문화 확산은 전문가 측면과 일반인 측면을 구분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쨌든 필요하고 중요한 건, 정원을 즐기는 ‘저변 확대‘가 아닐까 싶다. 저변이 늘어나야 시장도 커지고 산업도 발전하고, 그럼으로써 다음 단계로의 발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3.SPACE MAGAZINE: ‚사회적 정원두기‘, 착 감기는 말이다. 지금 답변중에 „정원을 가꾸고 즐기는“ 문화, 즉 개인 정원문화에서 사회 정원문화로 은근히 넘어갔는데 정원박람회란 결국 개인 정원보다는 공공정원(사회정원)의 신장을 목표하는 것이 아닌가. 정원문화 확산은 전문가 측면과 일반인 측면을 구분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사유와 공유에 대한 개념의 구분, 그에 대한 인식의 부양이라는 측면에서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남기준: 정원박람회를 주최하는 곳마다 생각과 입장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원박람회가 공공정원의 확산만을 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원박람회 행사를 통해 물리적으로 남는 것은 십여 개의 공공정원이고, 실제로 예산의 대부분도 존치정원 조성에 할애되고 있지만, 그 십여 개의 공공정원을 기획하고 만들고 관리하는 과정을 통해, 신진 정원 디자이너도 발굴하고, 새로운 정원 소재도 선보이고, 시민정원사들에게 직접 정원 관리를 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다양한 홍보 채널을 통해 끊임없이 ‘정원‘이란 두 글자를 일반인에게 노출시킨다. 정원박람회를 관람한 시민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정원과 한뼘 더 친해질 가능성도 훨씬 크다. 즉 정원박람회가 물리적인 공공정원을 남기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정원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의미있어 보인다. 공공정원을 접한 이들이 정원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개인정원을 작게라도 (화분이든 베란다정원이든) 가꾸고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박람회를 진행할 때, 어떤 분이 “정원을 남기려 하지 말고, 정원을 즐기고 가꾸는 사람들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지금까지 그 말씀을 명심하고 있다.

정원도 이제 영화나 문학처럼 작가를 논할 때가

3.SPACE MAGAZINE: 정원도 이제 영화나 문학처럼 작가를 논할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가? 예를 들어 정원박람회와 관련하여 “작가정원”이라는 개념이 새로 태어났다. 이 개념은 어떻게 탄생했나? 그리고 한국 조경의 전체적 맥락으로 볼 때 <작가정원>이 정원과 조경문화에 기여하는 특별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남기준: ‘작가정원‘이란 표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쇼가든 혹은 모델정원이란 표현보다 전하고자 하는 의미 전달이 직관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의 정원박람회는 행사 기간에만 전시했다가 철거하는 일시적인 정원이 아니라 존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쇼가든이나 모델정원이란 표현이 초기에 선택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전문가정원이란 표현을 쓰자니 그건 더 어색하다. 작가정원이란 표현에 부정적인 의견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원 작가(디자이너)의 등용문이란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실제로 작가정원에서 수상한 디자이너들이 이후 왕성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또 조경설계만 하던 디자이너들에게는 원하는 이미지의 정원을 직접 시공해보는 경험이 이후의 설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매년 정원박람회 출품자도 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작가정원의 퀄리티가 높아지고 있다. 일반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공공정원을 선보이는 것은 정원 문화 확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정원이 단지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정원 문화라는 것이 있기는 했던 것인지, 경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특히 정원이 아닌 보다 큰 스케일의 조경 계획과 설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 아파트 위주의 획일적인 주거 문화에서 화분을 가꾸는 홈 가드닝 수준을 넘어서는 정원 문화가 얼마나 정착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도시농업과 연계하거나 공원의 한 귀퉁이나 공동주택단지의 일부 공간을 정원으로 함께 가꾸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여러 지자체에서 시민정원사 교육 제도 등을 통해 저변을 넓히고 있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요소다. 정원박람회가 단순히 볼거리 있는 축제에서 벗어나 정원 문화 확산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인적 네트워크를 내실있게 구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례로 2019년에 서울정원박람회가 열린 해방촌의 경우는, 당시 동네정원 조성에 참여하셨던 주민분들이 해방촌에 존치된 여러 정원의 유지관리를 지속적으로 하고 계신데, 확실히 동네 주민분들의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느껴진다.

3.SPACE MAGAZINE:„특히 정원이 아닌 보다 큰 스케일의 조경 계획과 설계“라고 했는데 정원과 조경을 스케일에 따라 구분하는가 아니면 그 성격에 따라 구분하는가? 예를 들어 정원박람회장 전체-공원은 조경인가 정원인가?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할 때가 된 것 같지 않나?

남기준: 정원과 조경을 구분할 의도는 아니었다. 일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고, 또 비슷한 문제에 대해 글을 써주신 분도 계셨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으면 “작은 정원 몇 개 하고 있어요“라는 대답이 오고 갈 때, ‘작은 정원‘의 함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분은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작은 정원이 실제로는 크고 중요하다는 의미로 말이다.

스케일에 따라 정원과 조경을 구분하는 경우는 없지 않나? 정원과 공원이 구분되고, 공원과 광장이 나뉠 수는 있어도 말이다. 다만 설계자가 직접 시공할 수 있는 규모의 프로젝트와 그럴 수 없는 규모의 프로젝트는 분명히 구분되는데, 편의상 전자의 대명사로 정원을 사용했을 뿐이다. 특히 작가정원은 디자이너가 직접 시공까지 챙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별 고민 없이 그것과 구분되는 조경 계획과 설계를 이야기한 것이다.

잘 팔아야, 그 다음 책도 낼 수 있다

3.SPACE MAGAZINE: 환경과 조경에서 단행본 책임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3년 동안 출판사 <나무도시>를 운영했었다. 정원과 조경 출판계의 현황은 어떤가? 전문가들 외에 일반 대중에게도 어필하는가?
책에 대한 이상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잘 팔리는 책 보다는 의미있는 책을 만드는 것 같은데 그런가? 호흡이 길어서인가 아니면 타고난 체질인가?

남기준: 잘 팔리는 책보다 의미있는 책을 만들고 싶은건 전혀 아니다. 늘, 항상, 언제나 잘 팔리는 책을 만들고 싶다. 저에게 원고를 주셨던 모든 저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 다른 에디터가 편집했다면, 다른 출판사에서 펴냈다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제가 부족해서 혹은 우리 출판사의 역량이 부족해서 지금 정도의 판매 밖에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늘 자책한다.

3.SPACE MAGAZINE: 책이 잘 안 팔리는게 출판인의 책임이라고 보는가? 재미없는 책을 쓴 저자도 있고 좋은 책을 못 알아보는 독자들도 그렇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왜 혼자 책임지려 하는가?

남기준: 일단 독자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재미없는 책을 쓰신 저자분들께 죄송한 것도 아니다. 재미있는 책을 쓰셨는데, 많이 안 팔린 경우에만 자책하고 있다.

서른 살 즈음에는 ‘우리가 만드는 책에는 단 하나의 오타도 용납하지 않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조금 더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위해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이건 잘 안 팔리더라도 꼭 필요한 책이니 내야 한다‘와 같은 이야기를 함께 일하는 동료나 발행인께 하곤 했는데, 요즘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파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잘 팔아야, 그 다음 책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 분야에는 늘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떠돈다. 그래서 마흔 살이 지나고나서는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퇴직할 때까지는 종이책 시장이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란 이야기를 술자리 안주 삼아 한 적이 많다.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진심이었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천배쯤 좋고, 아직도 유튜브를 가까이하지 못하는 옛날 사람이다. 종이책의 느낌은 정말 사랑스럽다.

요즘에는 출판 문의가 오면 “죄송한데 사람들이 거의 책을 안봐서요“라는 말을 첫 마디로 꺼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올해에도 10종의 출간 예정 리스트가 작성되어 있다. 잘 팔기 위한 고민을 올해에만 최소 10번은 해볼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도 스스로 찔리는 구석이 많다. 편집자 입장에서야 1년에 여러 권 담당하는 책 중의 한 권일 수도 있지만, 어떤 저자분께는 정말로 오랫동안 고심하고 공들여 고쳐 쓴 ‘단 한 권‘의 소중한 책일 수도 있는데, 그에 걸맞게 최선을 다했나 싶다. 갑자기 머릿 속에 여러 저자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3.SPACE MAGAZINE: 묻고 싶은 게 더 많지만 다음 기회를 위해 남겨 두겠다. 꼭 하고 싶은데 질문을 안 해서 못한 말이 있으면 지금 해 달라.

남기준: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대중적인 종이잡지들도 휴간과 폐간의 고비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경 전문 잡지인 환경과조경이 올해 8월에 통권 400호를 맞이한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한 호 한 호 어렵게 펴내고 있다. 2013년에 환경과조경에 다시 복귀하면서 “한국 조경 분야에 월간 <환경과조경> 같은 전문 잡지가 하나쯤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후원하시는 마음으로 정기구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몇번이고 썼다가 지운 적이 있다. 내게는 호소력 있는 글을 쓰는 재능이 없구나, 라고 한탄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독자가 구독하고 싶은 잡지를 만드는 게 우선이지, 따위의 원론적인 다짐을 하기도 했다. 불현듯, 누적되는 적자에도 잡지 발간을 지속하고 계신 발행인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인터뷰가 끝나가니 나도 모르게 샐러리맨 모드로 전환되는 까닭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3.SPACE MAGAZINE: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위의 그 편지를 썼더라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쓰면 안 될까?

남기준: 그 편지는 올해 400호를 맞아서, 한번 써보려 한다.


남기준 편집장님 좋은 시간 감사드립니다.

남기준은

초등학교 때까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목련이 질 때의 처연함과 수수꽃다리의 그윽한 향기, 꽃사과의 앙증맞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유년의 추억 덕분인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이후, 조경 잡지와 정원, 조경, 식물, 도시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편집했다. 환경과조경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2016년부터는 정원박람회 행사 운영도 맡고 있다. 여러 명과 함께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공원을 읽다』, 『용산공원』, 『봄, 조경 사회 디자인』 등의 책을, 꽤 오래 전에 펴냈다.

다음에는 조경작업소 울의 김연금 소장과의 우문현답이 이어집니다.


© 3.SPACE MAGAZINE/인터뷰/진플루언서 남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