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나치스의 탄압에 쫓겨 데싸우의 바우하우스도 문을 닫고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당시 교장은 미스 판 데어 로에였는데 베를린 서남쪽의 랑크비츠 구 외곽에 공장 건물을 하나 얻어 사설 학원처럼 운영했다.  이때 바실리 칸딘스키, 요제프 알베르스, 루드비히 힐버스하이머, 릴리 라이히 등 교수들도 함께 이주했다. 나치스가 바우하우스를 못마땅하게 여긴 까닭은 그 이념이 극히 진보적이어서 사회 문화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컸음을 우려했기 때문이었겠으나 표면적으로는 볼셰비즘의 온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므로 미스 판 데어 로에는 사회주의에 동조했던 교수를 파면하고 이에 항의하던 학생들을 제적해야 했다. 

베를린에서도 나치스는 학원을 수색하고 학생들을 구속하는 등 탄압을 계속했으며 교수들의 봉급 등 재정 지원을 일체 끊었다. 결국 한 해를 못 넘기고 바우하우스는 완전히 폐쇄되었다.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망명 길을 떠났고 교장 미스 판 데어 로에 역시 미국으로 망명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도 좋을지. 결국 설립자 그로피우스를 중심으로 거점을 미국으로 옮긴 격이 되어 미국의 모더니즘이 형성되었고 이를 통해 바우하우스 이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으니… .

바우하우스-아카이브Bauhaus-Archiv의 설립

현재 베를린에 서 있는 바우하우스-아카이브는 일종의 박물관이며 행사장이다. 원래는 다름슈타트에 설립되었다가 베를린으로 이전했다. 1960년 한스-마리아 빙글러라는 이름의 예술사학자가 주관하여 바우하우스의 작품을 모아 아카이브를 설립했다. 그러나 초대 교장 그로피우스는 아카이브가 베를린에 있어야 한다고 여겼던 듯하다. 당시 노령이었던 그로피우스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지 박물관 설립을 염두에 두고 건축 설계도까지 만들어 보냈다. 마지막으로 고국을 방문하여 베를린 시장과 협상 했고 우여곡절 끝에 1971년 임시로 건물을 얻어 아카이브를 일단 베를린으로 옮겼다. 이때 그로피우스는 이미 사망한 뒤였으므로 그의 후배 Alexander Cvijanovic 가 설계를 마무리했으며 1976년 새 건물 착공에 들어 가 1979년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건물이 완성되었다.

아카이브 건물

공장 건물을 본 뜬 <톱날지붕saw-tooth-roof>이 인상적인 아카이브 건물은 바우하우스 개념에 따른 순백색이어서 톱날지붕과 함께 건물이라기 보다는 조형 작품의 느낌이 강하다. 남쪽으로 녹색의 란트베어 운하에 바로 면하고 있으며 북으로 티어가르텐이 있어 주변 환경이 우수한 편이다. 다만 동서가 아직 갈라졌던 시절에 건설되었으므로 서베를린의 동쪽 외곽에 위치하여 크게 주목 받지 못했는데(전공자들을 제외하고는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통일과 함께 주변에 주요 관공서, 대사관 건물 등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지금은 중심부로 이동한 셈이 되었다.

동쪽에 오래 된 빌라가 한 채 서 있었는데 이를 설계에 수렴하여 빌라 양식과 산업 건축 양식을 교묘하게 병합한 사례로 꼽힌다.((이 빌라는 프로이센의 금융가 였으며 비스마르크 내각의 장관직을 역임했던 하이트 자작의 소유였다.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건설과 함께 복원되어 현재는 프로이센 문화재단 사무국이 쓰고 있다.)) 평면은 데싸우 바우하우스 본관 건물처럼 날개 형태로 설계되어  역동적이다.

외부 공간 조경도 그로피우스의 원칙대로 건축가가 직접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1985년에 막스 빌이라는 조형 예술가의 설계에 따라 높이 14미터의 오색의 기둥을 세웠다. 강철관에 무지개 색의 철판을 입힌 것인데 공장 굴뚝을 연상시켜 톱날 지붕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카이브 건물은 1997년 베를린 건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베를린 주 문화재청. 문화재 데이터베이스))

바우하우스 역사의 기록 현장

바우하우스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교수 방법, 건축과 디자인으로 분야를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특히 공방에서 탄생한 학생들 작품, 건축 설계도와 모형, 사진 작품 및 기타 문서와 도서를 수집하여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드러내 주는 각종 문서를 모으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편지, 원고 초안, 인쇄물 등을 수집했으며 그로피우스도 본인이 간직했던 수많은 작품과 문서, 편지 등을 물려주어 바우하우스 역사 연구에 보탬이 되고 있다.

증축 프로젝트

수집품이 점점 늘어  지금 건물 만으로는 미처 다 소화할 수 없게 되어 2013년 신축 건물 건설이 결정되었다. 2015년 현상 공모를 실시하여 폴커 슈탑Volker Stab이라는 베를린 건축가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타워 형의 유리건물이며 어딘지 모르게 데싸우의 바우하우스 원조 건축과 느낌이 겹친다. 

바우하우스 백 주년에 맞추어 오픈하는 것이 맞는데 이리저리 공사 시작을 미루다가 2018년 말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니 마치 백 주년에 맞추어 공사를 시작한 것처럼 오해받게 되었다. 2022년에 완성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 아직 계획에 맞추어 제대로 준공한 역사가 없는 베를린이다 보니 과연 미지수이다.

신축 건물 이미지와 설계도를 보려면 건축가 홈페이지 여기로 또는 베를린 시 홈페이지 현상 공모 데이터 베이스 


요약

베를린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는 바우하우스 및 모더니즘의 역사를 기록한 매우 중요한 박물관이며 행사장이다. 건물 설계는 발터 그로피우스의 유작이다. 공장 톱날 지붕과 같은 실루엣과 순백의 외관으로 인해 마치 조형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 베를린 건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증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주소: Klingelhöferstraße 14, 10785 Berlin
  • 건축 문화재
  • 최초 설계: 1964년
  • 공사: 1976-1979
  • 건축 설계: Walter Gropius; Alexander Cvijanovic
  • 건축주: 베를린 시

WEB: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이미지 갤러리

 

위치

주의: 증축 공사로 인해 일시 폐쇄되었으며 2022년에 다시 오픈 예정이었으나 베를린 공사가 늘 그러하듯 질질 끌며 완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임시 주소: Knesebeckstr. 1-2 Berlin-Charlottenbu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