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NE플루언서와 우문현답 이어가기
희귀3종
김 장 훈 편
수목원전문가, 전문정원사, 겨울정원작가
정원사 김장훈과 만났다. 계속 동문서답을 주고받은 특이한 만남이었다. 김장훈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기 보다는 키워드를 받아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정원문화발전을 위한 시민정원사의 역할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컸다. 수원수목원 조성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열정 그 자체였다. 역시 힘들게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던 기회였다. 의사는 앞에 굳이 ‘전문’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아이고 선생님하며 존경받지만 정원사는 전문정원사라고 자신의 전문성을 스스로 주장해야 하는 몰이해한 사회현실을 김장훈은 오히려 옹호하듯 활짝 웃는다. 그러나 그의 풀꽃 웃음 뒤에는 긴 배움과 탐험과 탐구의 길이 있었다. 김장훈 앞에서 함부로 정원사임을 자처하지 말자. 그는 진짜 정원사다. 그 천로역정의 스토리를 듣는다. [고정희]
고정희 수원수목원 조성일로 많이 바쁠텐데 인터뷰에 응해 주어 감사하다. 말문을 트기 위해 좋아하는 나무를 물어보는데 수목원전문가에게 물어도 좋은지 모르겠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나무들이 질투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도 얘기해 주겠는가?

김장훈 같은 질문을 들을 때면 실제로 매번 하는 농담이다.(웃음) 다양한 식물들을 두루 좋아하고, 시기마다 특별히 관심 갖는 식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계속 변하기 때문에 한두 가지 종류의 식물을 콕 집어 답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답을 해야 한다면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식물은 풀이다. 풀 중에서도 진짜 풀이라 할 수 있는 그라스다. 그라스는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또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아서 그 가치를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식물이다. 하지만 어떤 자연의 풀밭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자라 군락의 바탕을 이루는 식물이고 정원 환경에서도 생태적으로나 미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바탕이 되어야 할 식물이다. 그라스를 활용한 정원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느낌이 매우 다르다. 그라스가 가진 싱그럽고 간결한 선과 점은 정원을 정말 섬세하게 살아나게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그라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 가히 열풍이라 할 정도다. 하지만 높은 관심만큼이나 우리가 이 식물에 대해 잘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렇지 못하다. 그냥 유명한 그라스 품종들을 ‘나 알고 있어’, ‘심어본 적 있어’ 뭐 이런 정도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
실례로 시중에 유통하는 그라스 대부분이 외국에서 선발된 유명한 품종들이지만 그 중 꽤 많은 것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자생하던 것이다. 그 종류들이 오래 전에 서구권 국가들로 건너가 선발되어 역으로 도입된 경우 어려운 품종명과 함께 본래 외국에서 들여온 식물로 알고 활용되곤 한다. 우리나라 산야에 같은 종이나 근연종이 자생하고 있어도 그 관계를 알지 못하니 그 식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어렵다. 또 상황이 그러하니, 정원 식물로 활용 가능성이 높은 그라스류가 우리나라 자연에 여전히 많이 있어도 우리 스스로 그런 식물들을 새롭게 찾아서 활용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정원용 식물에 대한 관심이 열풍으로 반짝하고 그치지 않으려면 분류군 별로 그 식물을 더 깊게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꼭 그라스류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식물 이야기를 하니 첫 질문부터 답이 길어졌다.
고정희 앞으로의 답도 기대된다. 이번 식물적용학 강좌에 1번으로 등록했다. 아직 배울 것이 남았다고 생각하는가?
김장훈 무척 그렇다. 식물적용학과 관련한 이론적인 기반에 대해서는 이제서야 공부를 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자연을 직접 보며 갈고 닦는 것도 이제야 발걸음 정도 뗀 초보 수준이다.
식재디자인이나 생태정원, 자연주의정원 등에 관심이 많아서 그 기초가 되는 식물적용학에 관해서도 평소 관심이 많았다. 외국 쪽 자료를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그 자료들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생태 식재디자인의 기초가 되는 이 학문은 독일에서부터 실험되고 정립되었다는 것이었다. 두해 전 여름 독일 바인하임시에 헤르만스호프식물원을 방문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친절히 정원 안내를 해주었던 카시안 슈미트 원장님은 이 정원이 독일에서 식물적용학이 정립되는데 토대가 된 무수한 실험들이 실제 진행된 장소 중 하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현재도 그 실험이 계속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바른 장소에 바른 식물을 적용한다는 생태식재의 기본 원칙이 그저 구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치밀한 실험으로 확인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를 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부러웠다.
그 후 식물적용학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언어적 장벽이 있어서 독일 쪽 자료는 더 자세하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독일에서의 연구를 이어서 보다 발전시켜오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영국 쉐필드대학 쪽 자료 등을 찾아보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지만 독일 쪽에서는 어떻게 교육을 하는지 늘 궁금했다.
식물적용학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겠다 마음을 내주셔서 박사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모쪼록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 되면 좋겠다. 강의 커리큘럼을 보니 역시 체계적인 틀거리가 좋다. 또 한편으론 매회 진행되는 내용들이 하나하나 작은 내용들이 아니라서 4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다루시려면 보통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매회 깊게 다루시기보다(깊게 다루어 주시면 너무 좋지만 그러면 힘드시니) 기본강의는 전체적인 틀거리에서 다루어주시더라도 보다 궁금한 내용들을 박사님께 직접 질의하며 공부해갈 수 있다면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정희 역시 우문현답이다. 식물적용학 강좌 홍보한 셈이 되어 민망하기도 한데 꼭 필요한 말을 대신 해주어 고맙다. 그런 고민들이 있었는지 최근에야 알았다. 그러나 오늘은 <정원사> 김장훈이 걸어온 천로역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하겠다고 예고했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늘 활짝 웃고 있어서 혹시 천로역정이 아니라 행복한 꽃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천로역정 끝에 오는 행복한 웃음인가?
김장훈 그것은 그냥 좀 성격인 것 같다. 내 삶에 어려움이나 어둠, 슬픔 같은 것들이 없을 수 없지만 성격적으로 잘 담아두거나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머릿속으로는 늘 여여하고 담담한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적인 깊이는 없는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을 해 본 20대는 개인적으로 성장하는데 좋은 자양분이 된 시간
고정희 그 무슨 겸손의 말씀. 서울대학교 응용생물화학부를 졸업했다. 그리고 졸업하던 해에 식물보호기사 자격증을 땄다. 식물보호기사는 뭔가? 응용생물학과 관련이 있는가?
김장훈 그렇다. 요즘은 응용생물학이라고 부르는 농업생물학은 병해충 및 생리적 환경적 이상 등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학문으로 크게 식물병리학, 응용곤충학 등과 같은 전공을 배운다. 본래 원예학와 농학으로부터 발전되어 나온 학문이다. 식물보호기사는 병해충 등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기술자를 인증하기 위한 자격증으로 응용생물학과에서 배우는 많은 내용들이 식물보호기사가 되기 위해 필수로 알아야하는 것들이다.
본래 식물 기르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학부 공부할 적에도 식물의 병원균이 되는 미생물과 세포단위의 유전공학을 주로 다루는 소속 학과의 전공 수업들보다는 원예학과나 농학과에서 개설한 실제 식물을 기르는 것과 관련한 수업들을 주로 찾아들었다.
크게 원예, 조경, 생태 이렇게 세 가지가 가드닝과 가장 직접 연관된 대학 전공이라고 할 때, 학교에서 배운 나의 기반을 굳이 이 세 가지 중에 꼽으라면 원예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대학원에서는 산림환경학을 공부했으니 생태에 대한 공부도 하였다.
고정희 학부졸업 후 공백이 좀 있다가 몇 년 뒤 천리포 수목원에 나타났다. 거기서 수목원전문가 과정을 밟았는데 수목원전문가가 되려는 결심을 어렵게 했나?
김장훈 개인적으로 관심사가 다양해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해보는 20대를 보냈다. 학부 졸업 후 필리핀으로 국제봉사를 갔었고 귀농을 꿈꾸며 유기농연구소에서 일을 하다가 수행을 하고 싶어서 절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나하나 이야기하면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경험이지만 인터뷰의 성격과 맞지 않을 것 같다. 요약하자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20대를 보냈고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 성장하는데 좋은 자양분이 된 시간이지만 무언가 한 분야를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30대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무엇을 하더라도 진득하게 하고 싶었다. 식물을 기르는 일은 내가 본래 좋아하는 일이어서 즐기면서 오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가볍게 선택한 일이 정원 일이었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이때를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 두 가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한두 해 하다말 일이 아니라면 처음 3년 정도는 처우나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일을 기본부터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겠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찾아보면 더 좋은 조건에서 시작할 수도 있었겠으나 천리포수목원에서 교육생으로 수목원전문가 양성교육을 받는 것으로부터 정원사 일을 시작했다. 이어서 평강식물원에서 일을 하며 수목원 관리 실무를 익히고 생태정원과 자생식물을 공부했다. 그렇게 시작한 덕에 아래에서부터 기초를 다지고 분야의 많은 분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무슨 일을 하든 진득하게 10년간 해보자 생각한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 직장에서 그 시간동안 계속 일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분야 안에서 도망가지 않고 진득하게 계속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10년 동안 무던히 하다 보면 내 나름의 전문성과 분야 안에서 활동 여지가 생겨난다는 것을 알았다.
관찰은 정원 일의 시작 – 찾아낼 수 있어야 담아낼 수도 있다
고정희 김장훈의 화제의 책, 겨울정원을 읽어보면 식물을 관찰하는 힘이 남다른 것 같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사진도 그런 관찰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주 미세한 것에 깊이 주의를 기울인다. 예를 들어 수피에 대한 묘사 등은 압권이다. 그 미세한 관찰의 힘으로 순수 식물학을 전공할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은 정원사가 되어 정원을 얘기한다. 조금 가볍게 선택한 일이 정원일이었고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했지만 정원과의 인연이 아주 깊어보인다.
김장훈 관찰은 정원 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관찰을 통해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은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내는 시작이다. 찾아낼 수 있어야 담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세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 미세한 것이 섬세한 분위기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경우들을 훌륭한 정원들을 통해 늘 경험하고 배웠기 때문이다.
정원에서 식물은 다 같은 식물이 아니었다. 천리포수목원 교육생 시절 목련 한 속만 해도 500여 가지 이상의 분류군이 수집되어 있었다. (현재는 900여 가지 이상을 보유) 목련의 계절이 시작되자 매일 듣도 보도 못했던 목련들이 피어나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 품종들 하나하나 비슷한 듯 다 달랐고 그 차이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했다. 그나마 식물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부분인 꽃은 특징을 찾기가 쉬운 편이고 잎과 수형 등 다른 요소들에서는 더 어렵다. 목련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물들에서 특징을 식별하기 위한 관찰을 자연스럽게 훈련하게 된 것 같다.
정원에서 시간도 다 같은 시간이 아니었다. 좋은 정원은 사계절 다른 풍경이 아니라 매달 다른 풍경, 아니 매주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롱우드가든 연수 시절 가장 좋아하는 정원이었던 챈티클리어가든이 그런 정원 중 하나였다. 미국 정원사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예술 정원으로 손꼽는 그 정원은 작은 정원이었지만 정말 찾아갈 때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고 보는 앵글마다 다른 느낌을 주었다. 주단위로 다른 느낌을 주는 정원을 보며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경 안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관찰을 해야 했다.
스스로도 그렇게 배우고 훈련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드닝 교육을 할 때도 첫 시간에 항상 강조하는 교육 중 하나가 ‘감동 훈련’이다. 좋은 관찰을 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 앞에서 자꾸 감동하는 것만큼 좋은 연습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러라도 자꾸 감동하다보며 감동 근육도 느는 것 같다. 마음으로 감동할 줄 알게 되고 그렇게 되어야 말랑말랑하게 감각이 살아나 제대로 된 관찰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정원 일을 하며 가장 좋아하는 일이 실제로는 그 일인 것 같다. 아름다운 정원과 자연에서 감동을 받고 내게는 무엇이 그렇게 아름다웠는지를 찾아내 이야기 들려주는 것. (거기까지가 딱 좋다. 그 다음에 그 아름다움을 내가 가꾸는 정원에 갈무리해내는 것은 업무의 영역이라 스트레스도 시작되는 것 같다. 웃음)
고정희 천리포 수목원에서 14개월, 평강식물원에서 2년 여 지낸 뒤 미국 롱우드가든스의 9개월 연수프로그램을 마쳤다. 도합 4년 반가량 직업교육을 받은 셈이다. 본인이 힘들게 스스로 개척한 직업교육 프로그램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미국에서 수목원교육과정을 더 밟지 않고 가드닝교육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김장훈 우선 롱우드가든의 국제가드닝연수 프로그램은 원래 12개월 프로그램이다. 몇 해 전부터 자국 학생들에게 기회를 더 주기 위해서 9개월 과정으로 축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 수목원교육은 상황이 닿지 않았다. 롱우드가든에는 실습을 주로 하는 실무 연수과정 이외에 롱우드가든 석사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식물원전문경영자 양성과정이 더 있었다. 그 과정을 더 해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롱우드 연수를 받을 때 한 차례 지원을 했지만 탈락했고 그 후에는 다시 지원할 상황이 아니었다.

높은 정원문화 이면에는 식물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가진 탄탄한 정원애호가 층이 있어야 한다
고정희 한국에서 받은 교육과 롱우드 가든스의 교육프로그램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나? 정원설계교육도 포함되어 있었는지 궁금하다. 해외 가드닝교육을 후배들에게 권하겠는가?
김장훈 진심으로 권하겠다. 롱우드가든에서의 1년은 정원사로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정원사로서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눈이 떠지는 경험이었다. 롱우드가든의 교육프로그램이 한국에서 받은 교육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그곳이 롱우드라는 점일 듯하다.
롱우드가든 국제가드닝연수 프로그램은 실습 중심의 연수 교육 프로그램이다. 롱우드가든은 세계적인 수준의 전시형 식물원이다. 전 직원이 3백여 명, 한해 자원봉사자가 천여 명에 이르는 대형 식물원으로 운영 시스템이 매우 모범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이런 선진 식물원의 다양한 부서를 매달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수준 높은 정원사들과 함께 직접 일 하고 생활해보는 경험만으로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자국 학생들에게만 기회가 제공되는 전문정원사 프로그램과 달리 연수 프로그램은 특정 교육을 수업 형태로 제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롱우드가든에는 연중 백여개의 다양한 정원 교육 프로그램(정원설계교육 포함)이 운영되고 있어 스스로 시간을 할애하여 수업을 찾아 들을 수 있다. 롱우드가든에서 연수를 갔던 것이 내년이면 만 10년이 되는 데 돌아보면 지금까지도 정원과 관련한 거의 모든 면에서 참 우수한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정원문화’다. 롱우드가든이 위치한 필라델피아는 흔히들 미국정원문화의 수도라고 불린다. 필라델피아에만도 주변에 좋은 공공정원이 차로 1시간 거리 이내에 30여 곳이 있고, 인근 뉴욕과 워싱톤DC 같은 도시 등에도 좋은 정원들이 많이 있어 일종의 북미 정원 클러스터 같은 곳이다. 정원 산업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이면에는 식물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가진 탄탄한 정원애호가 층이 있었다. 정원애호가들의 다양한 모습들과 활동들이 인상적이었고 그들이 있기에 그렇게 수준 높은 정원문화가 자력으로 유지되고 발전되고 있었다. 그 점이 무엇보다 제일 부러웠다.
고정희 지금은 스스로를 정원사라고 부른다. 수목원전문가라 하지 않고 왜 정원사인가? 본인만의 브랜드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에 정원사 제도를 뿌리내리기 위한 전략적 접근인가?
김장훈 ‘정원사’와 ‘수목원전문가’라는 말 둘 다 상황에 따라 쓰고 있다. 둘 중에 주로 사용하는 말이 ‘정원사’고 그 앞에 수식어를 하나 더 붙여서 ‘전문 정원사’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관련하여 에피소드가 있다. 한번은 한 수목원에 강의 요청받아 갔다가 연사를 소개하시던 분이 전문 정원사라는 호칭을 보고는 정원사면 정원사지 전문정원사는 뭐냐, 둘이 차이가 뭐냐, 그냥 정원사라고 하면 안되냐 라고 하셨다. 그렇다 그냥 정원사라고 해도 된다고 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었지만 어딘가 마음이 조금 편치 않았던 나는 차례가 오자 조금 맹랑하게 답을 했더랬다. ‘나는 정원사는 매우 전문적인 직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보다 수준 높은 정원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원사들은 스스로 전문성을 갈고 닦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전문 정원사라는 말은 그런 노력을 부단히 경주하겠다는 나의 다짐을 담아 스스로 붙인 칭호일 뿐이다. 어떻게 불러주셔도 괜찮다.’
정원사는 누구나 사용하는 매우 흔한 말이다. 원래 가드닝이 전문성이라는 진입 장벽없이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것을 지향하는 문화이기도 해서 누구라도 꽃을 심고 가꾸면 스스로 정원사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고 가드닝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가드닝을 취미로 하는 사람에서부터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까지 정원사라는 모두 사용하는 호칭이다 보니 정원사라는 용어만 가지고는 전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정원사도 이름 뒤에 사가 붙는 직종이니 이름만 들어도 전문가라 느낌이 확 오면 좋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문제를 업역에 대한 정의나 제도를 정립하는 방법 등을 통해 개선해가는 노력도 물론 필요할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노력들 이전에 정원사들 스스로 전문성을 더욱 높이고 다양한 매체나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관련분야를 잘 모르는 누가 생각하더라도 전문적인 정원사라고 하면 굳이 이러저러한 부연 설명 없이 전문가로 인정하는 상황이 된다면 업역을 정립하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업역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을 수 있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업역을 정립하려는 노력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정희 원예사라는 직업은 있는 것 같은데 살펴보니 원예사와 정원사의 정의가 오히려 일치하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업역 구분이 있나? 있다면 공론화해서 용어를 정립해야 하지 않을까?
김장훈 원예사와 정원사 모두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그 알맹이가 사회적으로 스스로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물론 분야가 전문화되고 사회가 고도화됨에 따라 정원 관련 업역 안에서도 보다 전문 영역들이 생겨났게 되므로 업역의 구분과 정의는 계속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원사라는 직업은 아주 오래된 직업군의 명칭이라는 생각을 한다. 식물원에 일하는 정원사들만 보아도 정원사라는 이름으로 식물 생산에서부터 디자인, 식재, 관리, 연구, 기록관리 등등 다양한 일을 하고 그 분야들마다 고유의 전문영역으로 전문가들이 활동을 한다. 모두 정원사라는 명칭으로 포괄적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정원사라는 말로는 다 담기 어렵다.
우수한 정원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양질의 가드닝 교육과 시민참여가 매우 중요한 역할
고정희 알맹이와 껍질이 일치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다. 롱우드에서 돌아온 뒤 서울숲 도시정원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다시 경력을 시작한 것 같은데 도시정원사 교육 프로그램이 어떤 목적으로 설치되었는지 궁금하다. 무엇을 교육했나? 시민정원사와 같은 것인가?
김장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롱우드가든에서 그곳의 정원문화를 체험하며 그런 우수한 정원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양질의 가드닝 교육과 공공정원에 자원봉사 등 시민참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양질의 가드닝 교육을 만들어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서울숲에서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게 된 것이 서울숲 도시정원사 실습학교였다.
2014년과 2015년 두해 동안 진행되었다.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오전 3시간 가드닝 이론 교육을 하고 오후 3시간동안 관련한 실습을 진행했다. 9개월 동안 매주 하루를 오롯이 시간을 내어 한 가지 공부를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닌데도 참가자들의 열의가 놀라웠다. 실습을 꽤 강도 높게 진행해서 실습을 마치고 집에 가면 몸살이 났다고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음 시간이면 어김없이 밝은 표정으로 출석을 했다.
사실 거의 맨땅에 헤딩을 하는 기분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 공원은 다양한 가드닝 실습을 해보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닌 것이 실습 소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공원의 인프라와 관리 형태는 가드닝이라는 측면에서 단순한 편이다). 그나마 실습을 위해 조성한 정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공원 한편 유휴공간에 참가자들이 직접 조성하고 한 해 동안 정원이 변해가는 모습을 직접 관찰도 하고 관리해보면서 공간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 준전문가 수준으로 앎도 커졌다. 실습정원을 ‘오소정원’이라 이름도 붙여주고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자신들이 만든 정원을 가꾸어 오고 있으며 정원과 관련한 안팎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해오고 있다.
서울숲 도시정원사 수업은 결과적으로 두 가지 목적을 가진 실험이 되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가드닝에 대한 재미를 농밀하게 체험할 수 있는 실습 교육과 공공 공간을 활용해 시민이 함께 가꾸는 공동체정원 조성. 좋은 실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정희 서울시 시민정원사 전문강사로도 일했다. 그런데 교육프로그램을 보면 단 170여시간, 즉 56시간 이론교육과 120시간 정도의 실습을 마치면 시민정원사라 부르고 공원녹지 관리나 가드닝 관련 산업에서 일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시민들을 정원에 가까이 가게 하고 새로운 취업의 기회를 열어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본인이 걸어온 힘든 길과 비교해볼 때 그리고 정원이라는 것의 본질과 비교해 볼 때 170일도 아니고 170여 시간만에 과연 정원사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프로 정원사와의 업역 구분은 어떻게 하는가? 프로정원사가 있기는 한가?
김장훈 서울시 시민정원사 프로그램에서 나는 매 기수 4시간 정도 한 꼭지 교육을 요청받아 진행했던 것이 전부다. 그래서 내가 그 프로그램의 진행 주체인 냥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런 것을 전제로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하면 이렇다.
물론 이야기하신 것처럼 한계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교육 프로그램으로 프로 정원사가 되기는 어려우며 프로 정원사를 양성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분야에 모든 사람들이 프로 정원사가 될 필요는 없고 정원을 취미로 하는 애호가로서 더 많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유행처럼 진행되는 시민정원사 프로그램은 한계도 있지만 기여한 것도 분명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정원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충분한 교양을 갖춘 애호가들을 단기간동안 많이 만들어냈다. 서울시민정원사의 경우 2년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170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가랑비도 2년 동안 맞으면 꽤 젖게 마련이고 어딘가는 제법 충분히 젖는 경우들도 생겨나는 법이다. 실제로 시민정원사들은 일회성 교육 참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원 관련한 다양한 활동들을 꾸준히 이어나가며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사회에 정원 열풍이 자리를 잡는데 이런 정원 애호가들의 존재도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원문화는 가꾸는 사람이 주가 되어 만들어가는 정원문화다. 정원을 만들어주는 사람들만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자생성이 있지 않나 싶다. 어딘가의 지원에 계속 의존한 발전이 아니라 말이다. 정원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이 정원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정원문화를 이야기할 때 주로 공급자들의 입장에서 고민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정원 조성업이나 식물 판매업 등과 같이 정원 관련 인프라를 공급하는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정원이라는 시장이 안정적이고 자생적일 수 있으려면 수요자를 키워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생각하다. 그래야 수요와 공급라는 시장의 균형도 맞게 되고 전체적으로 파이가 더 커질 수 있다. 잠재적인 수요자이자 공급자가 될 수 있는, 가드닝 자체를 즐기는 다양한 애호가들이 탄탄하게 있어야 정원 문화가 풍성해지고 다양해질 수 있다. 시민정원사 프로그램을 시작한 목적이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로 볼 때 그런 효과도 일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정원은 그것을 즐기고 가꾸는 사람이 다양하게 있어야 더 다채로워지고 재미있어진다. 그렇게 재미있고 유익해보이면 더 다양한 사람들이 새롭게 유입되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지 않나 싶다. 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일이니까.
전문정원사와 정원사를 구분해서 말해야 하는 현실
고정희 우리 지금 계속 동문서답하고 있는 것 아는지?(웃음). 덕분에 좋은 말 많이 듣고 있다. 가드닝과 정원문화의 신장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프로정원사들을 양성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듣고 싶었다. 김장훈은 „좋은 정원사는 이런다 또는 이래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전후 맥락과 연계해 보면 김장훈의 정원사는 정원을 직접 디자인하여 만들고 계속 가꾸어가는 사람을 말하는 듯하다. 그러한가? 이를 실무에 대입해 보면 사립정원에서만 가능할 것 같다. 공공정원의 경우 업무의 분화로 인해 설계하는 사람, 조성하는 사람, 가꾸는 사람이 각각 따로 있다. 김장훈의 좋은 정원사는 이중 어느 과정에서 활동하는가? 아니면 정원사는 사립정원에만 존재하는가?
김장훈 물론 공공정원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보면 분화된 업무들을 각각의 전문가들이 관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공공정원이 정말 공공의 것이 되려면 그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참여로 공공정원 안에서도 정원을 가꾸는 가드닝 문화가 접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화가 사립정원에만 존재할 이유는 없다. 문화에는 이래야한다 저래야 한다가 없다고 생각하고 사회적 상황에 맞추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아파트 생활을 주로하고 개인정원을 가꿀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도심 속 공공정원들이 도시 안에서 정원문화를 확산하는데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소정원은 서울숲이라는 도시공원에서 시민들이 가꾸는 정원을 시도해본 사례이고 요즘 공동체정원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공간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전문 정원사로서 나는 공공정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전문가이기도 하고 또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공공 공간에서도 가드닝 문화가 활성화되기를 꿈꾸는 사람이기도 하다.
정원사가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이야기한 것은 이런 이야기보다는 앞서 이야기한 정원사의 전문성과 관련한 이야기다. 분야의 전문가들 마다 각각의 전문 영역이 있어 협업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걸 잘 하기 위해서라도 각자는 관련한 일을 두루 잘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고정희 좋은 일이지만 시민들 자원봉사에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원과 도시녹지는 누가 관리하는가? 그 관리 인력을 뭐라 칭하는가? 자원봉사하는 사람들 말고 프로를 말하는 것이다.
김장훈 어떤 사람들은 정원과 공원의 차이는 식물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정원사가 관리를 하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롱우드가든에는 그라운드키퍼(ground keeper)라는 이름으로 녹지를 관리하는 팀이 따로 있고 주제정원을 관리하는 정원사(gardener)가 있다. 공원 녹지를 관리하는 녹지관리사는 굳이 이야기하면 그라운드키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녹지관리사 역시 분명 나름의 전문 영역이지만 주제정원을 다루기에는 너무 거칠다. 섬세하게 관리되어야하는 정원들은 전문적인 정원사에 의해서 관리될 때 비로소 정원처럼 관리될 수 있다.
고정희 그라운드키퍼가 한국에 있다는 건지 아닌지 아직 이해 못했다(웃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김장훈은 이제 다시 수목원전문가로 돌아가 2017년부터 수원시 수목원조성을 담당하고 있다. 꿈의 프로젝트일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일의 스케일이 확 달라지고 책임도 막중해져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다. 어떤가?
김장훈 아직 경험이 일천해서 부족한 점이 여러 가지로 많다. 하지만 일의 스케일이나 내용 등은 진행과정 중에 전문성을 스스로 더 개발하는 것으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고 개인적으로 여전히 부족한 부분은 자문 등을 통해서나 조직 차원에서 더 채워가며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들 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공조직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데서 오는 어려움이다. 정원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해도 잘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부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공기관의 특성상 여러 번 확인하고 간다. 그것은 공기관의 큰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경우가 많다. 금방 설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때마다 설득에 설득을 해야 한다. 그래도 안되는 경우들이 쌓이다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애당초 설득이 어렵겠다 싶어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게 되는 경우들도 생겨난다.
공기관에서는 필요해서 채용한 전문가를 좀 더 믿고 경청하고 진행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그동안 공기관들에서 많은 수목원 식물원들을 만들었지만 아쉬운 경우들도 많지 않았나. 독창적이고 실용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도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야의 확장과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고정희 고충이 많아 보인다. 너무나 이해가 간다. 2022년에 오픈할 것이라는데 한창 바쁠 것 같다. 양묘장 설립으로부터 식물유전자원 확보 등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수목원의 성격과 프로그램을 보니 김장훈이 걸어온 길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전문수목원의 성격과 정원이 접목되었다. 김장훈이 방향을 잡았나?

수목원전문가를 사전에 채용한 덕분에 중요한 준비 작업들을 챙길 수 있었다
김장훈 공공정원이라 누구 한 사람이 방향을 잡았다고 말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의 노력과 바람으로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만드는데 노력한 사람들이 드러나기보다 수원수목원이 무탈하게 완공되고 감동을 주는 특별한 장소로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를 잡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만 조성과정에서 김장훈이 방향을 잡는데 많이 관여한 것은 맞다. 기본계획이 수립된 후 프로젝트에 합류를 했다. 그 후 이러저러한 행정절차와 실시설계를 추진했고 지난 12월부터 조성공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립식물원 조성 과정에서 준비 단계에서부터 수목원전문가를 채용해서 추진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거의 처음이지 않나 싶다. 덕분에 보다 체계적이고 재미있는 식물원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물원은 조성 공사를 추진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성 이후 식물원이 제대로 세팅이 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할 작업들이 있다. 하지만 대개는 조성하기에 급급해서 놓치고 가기 일쑤이다. 수목원전문가를 사전에 채용한 덕분에 그런 작업들은 챙기고 갈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식물수집방침 수립’, ‘수원시 자생식물 수집 증식’, ‘양묘장 운영’, ‘수원시 연관 식물유전자원 조사’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식물원이 식물유전자원의 수집과 보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식물의 설립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식물수집방침(plant collection policy)을 제일 먼저 수립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간과하고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수원수목원에서는 실시설계과정에서 식물수집방침과 운영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동시에 진행하도록 했다. 또 수집식물들 중 중요한 식물유전자원들은 자생지에서 직접 채집을 하여 씨앗부터 길러 증식 보전해야 한다. 수원수목원은 지역의 식물원으로서 수원시의 자생식물들부터 직접 채집하고 보전하는 노력을 사전에 시작하고 있다. 아울러 양묘장을 운영하여 중요한 식물유전자원들을 사전에 수집 확보하고 기록 관리하여 수목원 조성과정에서부터 체계적인 식물 수집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원수목원은 도심형식물원으로서 시민들과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점들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식물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시민 공청회와 특강을 운영하기도 했고 소통박스를 운영하며 시민들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특히 3개월 동안 진행된 소통박스에는 시민 1천여 명이 직접 방문하여 수원수목원 조성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담은 의견을 개진해주었다. 우리나라 공립식물원 조성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시민의견을 직접 들은 경우는 거의 유일할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진행 과정에도 더 다양한 재미있고 내용들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보다 선도적이고 창의적인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고정희 열정이 대단하다. 그런데 왜 식물원이 아니고 수목원인가? 수목만 있고 다른 식물은 없을 것 같아 살짝 걱정된다.
김장훈 식물원이 맞다. 수원수목원이 아니라 수원식물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시대적인 추세와도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수목원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데는 한국적인 상황이 있다.
사실 식물원과 수목원은 같은 것이라고 국제식물원보전연맹(BGCI)에서도 그렇게 분명하게 정리하여 이야기한다. 둘 중 보다 더 정확하고 시대적인 상황에도 맞는 이름은 식물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수목원이 더 전문적이고 규모도 큰 반면 식물원은 꽃을 주로 판매하는 작은 온실 정도를 떠올리는 선입견이 있다. 실제로는 식물원이 수목원을 포괄하는 더 큰 개념인데도 말이다. 이런 것들은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용어를 잘못 사용해서 대중들이 계속 헷갈리게 만드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수원수목원의 경우에도 그런 잘못된 인식을 넘어서 과감히 정확한 이름인 식물원을 사용하자고 무수히 설득을 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작은 예지만 이런 점들이 안타깝다.
고정희 나 역시 식물원은 작고 수목원은 크다라는 편견과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다. 이제 아쉽지만 대화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장훈의 책 겨울정원을 읽으며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다음 책이 기다려 진다. 다음은 그라스 정원인가?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
김장훈 우선 박사님 책들의 열성 팬으로서 겨울정원 책 칭찬을 들으니 정말 영광이다. 그라스 가드닝에 대한 책은 이제 집필을 시작했다. 책 제목은 ‘풀의 정원, 그라스 가드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용의 틀거리는 이미 잡아두었고 사진을 비롯한 자료들을 많이 모아둔 상황이다. 부지런히 써서 올해 하반기에는 꼭 나오게 할 생각이다.
고정희 기대하겠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묻지 않아서 못한 말이 있으면 해 달라.
김장훈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다.
김장훈 정원사님 좋은 시간 감사드립니다.

김장훈은,
식물과 자연을 보고 감동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전문 정원사’다. 사람들과 함께 정원을 가꾸고 감상하는 즐거움을 나눌 때가 행복한 ‘정원 안내자’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응용생물화학부와 동 대학 농림생물자원학부 산림환경학 석사를 졸업했다.
천리포수목원에서 수목원전문가과정을 통해 정원사로 입문했고 평강식물원 식물팀에 근무하며 수목원관리 실무를 익혔다. 그리고 미국 롱우드가든에서 국제 가드닝 연수를 수료했다. 귀국해서 서울숲과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시민과 함께 정원을 만들고 가드닝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정원문화가 부쩍 성장하는 것을 도왔다.
2017년부터 수원시청에 ‘수목원 전문가’로 근무하여 ‘수원수목원’ 조성 프로젝트를 추진해오고 있다.
책 ‘겨울정원’을 썼다.
gongfuin98@naver.com
© 3.SPACE MAGAZINE/진플루언서와 우문현답 이어가기/김장훈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