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뉴스면을 장식하는 ‘그린란드 구매설’이나 ‘아틱Arctic 자원 전쟁’ 같은 헤드라인을 보고 있으면, 한 편의 어처구니없는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한 불쾌감을 넘어 분노가 솟구친다. 강대국들은 그린란드를 ‘전략적 자산’이라 부르지만, 그 냉소적인 숫자 뒤에는 안나 킴Anna Kim이 소설 <어느 밤의 해부>에서 그토록 치밀하고 가슴 아프게 묘사했던 그린란드 사람들의 ‘절박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한국계 오스트리아 작가 안나 킴. 유럽 문학상 수상 소설 <어느 밤의 해부>에서 그린란드인들을 자살로 내모는 절박함과 절망감을 아프게 묘사했다. © Surhkamp Verlag

 

낱개로 분리할 수 없는 삶의 밀도

안나 킴은 그린란드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 자살을 통해, 외부인이 이식한 ‘문명’이 어떻게 한 민족의 정신적 뿌리, 개인의 영혼을 갉아먹는지 보여주었다. 그 소설 속 인물들의 고통은 개인의 사건이라기보다는, 대대로 내려온 얼음 사냥의 전통과 현대적 거주 방식 사이에서 찢겨 나간 공동체 전체의 신음이다. 그들의 삶은 그 땅의 바람, 얼음의 결, 그리고 조상들의 이야기와 밀도 높게 결합되어 있어 결코 분리해 낼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강대국들은 그 땅을 마치 시장의 물건처럼 사고팔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부동산 거래 제안이 아니다. 한 민족이 겪어온 고통의 역사를 무시하고, 그들이 지켜온 삶의 밀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존재론적 모욕’이다.

 

 

 

‘스밀라’가 읽어내던 얼음, 그리고 빼앗긴 감각

피터 회의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서 주인공 스밀라는 눈과 얼음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세상을 읽어낸다. 이누이트들에게 얼음은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삶의 길을 열어주는 생명의 근원이다. 서구의 자본이 빙하 밑의 희토류를 캐내기 위해 드릴을 들이댈 때, 그들이 파괴하는 것은 그냥 얼음덩어리가 아니라 그 땅의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감각’이고 거기 스며있는 이들의 혼이다.

누구에게도 감각과 혼을 박탈할 권리는 없다. “경제 발전”이나 “에너지 안보”라는 거창한 구호로도 이 야만적인 약탈을 합리화할 수 없다. 기후 위기를 초래한 서구 열강들이 그 위기로 인해 드러난 자원을 다시 차지하겠다고 덤벼드는 모습은, 소설보다 더 잔인한 ‘제2의 식민 정책’일 뿐이다.

빙하가 녹은 자리에 남을 것

그린란드인들에게 복지란 통장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가 아니다. 그것은 스밀라가 읽어내던 그 얼음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며, 밤마다 절망에 빠져 자살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내일의 안정’이다.
우리는 안나 킴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한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세운 ‘현대적 낙원’은 결국 자살과 우울이라는 폐허만을 남긴다는 사실을. 그러나 영혼 없는 강대국의 위정자들은 그게 왜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그린란드에서 벌어지는 일은 영토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물질적 탐욕’이라는 서구의 괴물과 ‘삶의 존엄’을 지키려는 인간 사이의 마지막 사투다.

우리는 이제 이 어처구니없는 연극을 멈춰야 한다. 그린란드는 구매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다시 배워야 할 ‘성소聖所’다. 그들의 얼음을 건드리지 마라. 그 얼음은 그들의 삶이며, 동시에 우리 인류가 지켜야 할 마지막 양심의 두께이다.